제6장

2025년 11월 12일, 기자

나딤 파흐미는 카림의 휴대전화에 손을 대지 않은 채 기술요원에게 말했다.

“화면을 계속 촬영하십시오. 네트워크는 끊지 말고.”

기술요원이 노트북에 연결된 장치를 조작했다. 로그인 요청이 발생한 시각과 장치정보, 서버 응답값이 화면 한편에 기록되기 시작했다. 카림은 손을 무릎 아래로 내렸다. 자신도 모르게 승인 버튼을 누를까 두려운 사람처럼 보였다.

“승인을 거절하면 안 됩니까?”

그가 물었다.

“아무것도 누르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나딤이 대답했다.

“왜요?”

“상대가 무엇을 확인하려는지 모르니까요.”

“모르다니요? 계정에 들어가려는 거잖아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럼 막아야죠.”

나딤은 줄어드는 숫자를 바라보았다.

“승인 요청을 반복해서 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용자가 피곤하거나 당황한 상태에서 실수로 승인하는 걸 노리는 겁니다.”

“지금 내가 당황했는지까지 알고 있다는 말입니까?”

“당신 형이 오늘 죽었다는 사실은 박물관 안에서 이미 퍼졌습니다.”

카림의 얼굴이 굳었다. 나딤은 감정을 누르듯 목소리를 낮췄다.

“이 계정에 접속하려는 사람이 그 사실을 모를 가능성은 낮습니다.”

카림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내 요청이 만료되었고 잠금화면으로 돌아간 뒤에도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기술요원은 노트북에 표시된 접속정보를 확인했다.

“위치는 기자로만 나옵니다.”

“장치는요?”

나딤이 물었다.

“윈도 운영체제. 브라우저 접속입니다. 새 장치라서 세부 식별값은 없습니다.”

“아이피 주소는?”

“기관 중계망을 거쳤습니다.”

“어느 기관입니까?”

기술요원은 답하지 않고 화면을 확대했다.

나딤이 그 뒤로 다가갔다. 잠시 뒤 그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말씀하십시오.”

“마아트 통합기록망의 외부접속 중계주소입니다.”

카림이 말했다.

“그 말은…재단 서버에서 들어왔다는 겁니까?”

“아뇨. 그런 뜻은 아닙니다.”

기술요원이 서둘러 설명했다.

“통합기록 사업에 참여하는 기관은 같은 중계망으로 접속합니다. 박물관, 지역 수장고, 재단 기술팀, 협력업체까지 모두 해당 주소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결국에는 누군지 모른다는 말이군요.”

“현재로선 그렇습니다.”

카림의 휴대전화가 다시 진동했다. 이번에는 계정 보안알림이었다.

‘복구 이메일 변경 요청이 접수되었습니다. 요청한 적이 없다면 계정을 보호하십시오.’

나딤이 물었다.

“복구 이메일은 누구 것입니까?”

“형 이메일입니다.”

“다른 복구수단은요?”

“제 번호예요.”

“상대는 비밀번호를 알고 있습니다.”

기술요원이 말했다.

“그러나 로그인 승인단계에서 막혔고, 그렇기에 복구정보를 바꾸려고 하는 겁니다. 다시 말해 계정 전체를 가로채려는 것 같습니다.”

나딤은 카림을 바라보았다.

“하산의 수첩 원본이 어디 있는지 정확히 말씀하십시오.”

카림의 시선이 휴대전화에서 떨어졌다.

“그게 왜 필요하죠?”

“저 계정에는 수첩 촬영본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요?”

“상대가 무엇을 찾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ABY–17이라는 항목을 찾고 있습니다. 그 기호가 원본 수첩에 있다면 디지털 자료 다음은 실물일 수 있습니다.”

카림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집에 있다고 했죠?”

나딤이 물었다.

“제 집에요.”

“지금 누가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나딤이 수사관 한 명에게 아랍어로 지시했다. 수사관은 자리에서 일어나 통화하며 조사실 밖으로 나갔다. 카림이 말했다.

“지금 수색영장도 없이 들어가겠다는 겁니까?”

“당신에게 열어달라고 할 겁니다.”

“저는 지금 어머니에게 가야 해요. 어떤 상황인지 아시잖아요.”

“알고 있습니다.”

“형의 시신도 아직 못 봤어요.”

나딤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당신에게 무엇이 우선인지는 제가 결정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누군가 이 계정에 접근하고 있고, 그 사람이 당신 아버지의 자료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는 탁자 위의 휴대전화를 가리켰다.

“유세프의 사망 뒤에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카림이 낮게 대답했다.

“오히려 형이 죽기를 기다린 것처럼 보이네요.”

나딤은 그 말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조사가 끝난 것은 오후 아홉 시가 가까워졌을 때였다. 나딤은 질문을 멈췄고, 기술요원은 카림의 휴대전화에 들어온 로그인 요청을 복제해 보존했다. 라티프 아카이브 계정의 비밀번호는 바꾸지 않았다. 계정을 즉시 잠그면 접속자가 자신들의 행보가 감시받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새로운 로그인은 모두 차단했고, 카림에게 오는 승인 요청만 별도의 수사단말기에 전달되도록 설정했다. 나딤은 그것을 ‘보존’이라고 불렀다. 카림에게는 형의 이름으로 들어오는 요청을 계속 보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는 수사관 두 명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하산의 수첩을 확인하고 어머니에게 가겠다고 했다. 도윤과 주원, 태겸은 연구자 숙소로 돌아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다만 숙소 밖으로 나갈 때마다 나딤에게 알려야 했고, 여권은 돌려받지 못했다.

행정동을 나설 때 박물관 로비는 거의 비어 있었다. 세미나 안내판은 그대로였지만 유세프의 이름이 적힌 발표 일정에는 흰 종이가 덧붙어 있었고 행사 취소를 알리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었다. 통합기록 가동일까지 남은 날짜는 화면 위에서 계속 줄고 있었다.

‘9 DAYS’

주원은 전광판 앞에서 잠깐 걸음을 멈췄다.

“저건 안 멈추네.”

태겸이 말했다.

“사람이 죽었다고 시스템이 기다려주진 않으니까.”

“그 시스템 때문에 사람이 죽었을 수도 있는데.”

“모르는 일이지.”

주원이 태겸을 보았다.

“나딤이랑 잘 맞겠네.”

태겸은 대꾸하지 않았다. 도윤은 두 사람보다 몇 걸음 앞서 걷고 있었다. 가방 안에는 전날 밤 유세프의 데이터베이스 화면에서 출력한 종이가 들어 있었다.

‘INITIAL PROVENANCE: UNKNOWN’

현재 시스템에서는 사라진 한 줄. 그 종이가 있다는 사실을 나딤에게 말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고의가 아니었다. 유세프의 죽음과 휴대전화, 사후 로그인, 하산의 수첩이 차례로 드러나면서 작은 인쇄물 한 장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기억이 났지만, 굳이 말하지 않기로 했다. 나딤에게 있어 아직 도윤 일행은 유세프의 비공개 연구를 본 외국인 학자들이었고, 사건 전날 박물관의 제한구역에 들어간 사람들이었다. 도윤은 종이 한 장 때문에 자신들이 유물자료를 무단으로 가져간 사람처럼 보일 가능성을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버릴 수도 없었다. 그건 사라진 기록이 존재했다는 유일한 물리적 흔적이었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 로비에는 야간 직원 한 명만 남아 있었다. 그는 도윤 일행을 알아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전에 박물관에서 사고가 났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자세한 내용은 모르는 듯했다.

“오늘은 늦으셨네요.”

그가 영어로 말했다. 주원은 대답 대신 가볍게 미소를 짓고는 객실 열쇠를 받아 들었다. 엘리베이터는 오래된 전동음을 내며 3층까지 올라갔다. 세 사람의 방은 같은 복도에 나란히 배정되어 있었다. 도윤은 방 앞에서 출입카드를 단말기에 댔다. 초록불이 켜졌다. 잠시 뒤 문을 연 순간 그는 걸음을 멈췄다.

방 안이 어둡지 않았다. 침대 옆의 작은 스탠드가 켜져 있었기 때문이다. 도윤은 문턱에 선 채 방 안을 바라보았다.

“왜 그래?”

뒤따라오던 주원이 물었다.

“불을 켜놓고 갔던가?”

“네가?”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고 아침에 방을 나설 때의 장면을 떠올렸다. 유세프를 만나러 가기 위해 일찍 내려갔고, 그때는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만으로 충분했다. 굳이 스탠드를 켤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 이후에 벌어진 일을 생각하면 작은 불 하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주원이 도윤의 어깨 너머로 방 안을 보았다.

“청소했겠지.”

“아니. 오늘은 방에 들어오지 말라고 표시해뒀어.”

도윤이 가리킨 문손잡이 안쪽에는 아직도 ‘방해하지 마십시오’ 표지가 걸려 있었다. 도윤은 방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태겸이 자신의 객실 문을 열다가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야?”

“잠깐만 너도 방에 들어가지 말아봐.”

태겸은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 도윤은 휴대전화를 꺼내 나딤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무슨 일입니까?”

나딤의 목소리 뒤로 차량 소음이 들렸다.

“방에 누군가 들어온 것 같습니다.”

“무엇이 없어졌습니까?”

“아직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들어갔다는 건 어떻게 안 겁니까?”

“제가 켜놓지 않은 불이 켜져 있습니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방 밖에 계십시오.”

“알겠습니다.”

“아무것도 만지지 말고, 호텔 직원도 들여보내지 마십시오. 지금 가겠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주원이 복도 벽에 등을 기대었다.

“만일…단순히 네 착각이었고 저 망할 스탠드 하나로 경찰을 부른 거면 좀 민망하겠는데.”

도윤은 방 안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침대와 책상, 작은 옷장. 모든 것이 아침에 보았던 것과 같아 보였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 이상했다. 책상 위에는 노트북과 책 두 권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여권은 경찰이 가져갔지만 지갑에 남겨둔 현금과 신용카드가 서랍 안에 있었다. 카메라와 휴대용 저장장치도 눈에 보였다. 물건을 훔치려 들어온 사람치고는 방을 지나치게 깨끗하게 사용했다. 태겸이 자신의 객실 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내 방에도 불이 켜져 있어.”

문 아래의 좁은 틈으로 흰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너는 키고 나갔어?”

주원이 물었다.

“아니야.”

주원이 자신의 방을 확인했다.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세 사람은 복도 가운데에 서서 닫힌 문들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복도에서 두 개의 객실 문 아래로만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딤은 17분 만에 도착했다. 혼자가 아니었다. 제복을 입지 않은 수사관 두 명과 숙소 보안책임자가 함께였다. 보안책임자는 무슨 일인지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전자출입기록이 담긴 태블릿을 들고 있었다.

“객실에 들어간 사람은 없습니다.”

그가 말했다. 나딤은 복도에 도착하자마자 물었다.

“청소 직원도요?”

“오전 10시 전에 한 차례 들어갔습니다. 그때는 손님들이 아직 방에 있었습니다.”

도윤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우리는 7시 30분 전에 나갔어요.”

보안책임자가 기록을 다시 확인했다.

“그…10시 14분에 청소용 카드가 사용됐습니다.”

“방해하지 말라는 표지가 걸려 있었는데요.”

“직원이 실수했을 수 있습니다.”

“세 방 모두요?”

보안책임자의 손이 멈췄다.

“아뇨. 세 방 모두는 아닙니다.”

나딤이 말했다.

“기록을 보여주십시오.”

도윤의 방에는 오전 10시 14분, 청소직원 카드가 사용된 기록이 있었다. 태겸의 방도 같은 카드가 2분 뒤에 사용됐다. 주원의 방에는 기록이 없었다. 숙소 직원이 청소담당자에게 전화했다. 몇 차례 연결되지 않다가 통화가 이루어졌다. 직원은 아랍어로 상황을 설명한 뒤 얼굴을 찌푸렸다.

“오늘 3층에는 들어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기록에는 들어갔다고 되어 있잖습니까.”

나딤이 말했다.

“다른 직원이 카드를 사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카드는 개인별로 지급됩니까?”

“네.”

“분실신고는요?”

“없었습니다.”

나딤은 수사관들에게 장갑과 덧신을 착용하게 했다. 그리곤 먼저 도윤의 방으로 들어갔다. 스탠드가 켜진 것을 제외하면 방은 정돈되어 있었다. 침대는 아침에 사용한 그대로였고, 여행가방은 벽 옆에 세워져 있었다. 옷장 문과 서랍도 닫혀 있었다. 수사관 한 명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나딤은 도윤에게 문밖에서 보이는 물건 가운데 위치가 달라진 것이 있는지 물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확실하지 않은 것은 만지지 마십시오. 무엇을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나는 것만 말씀하세요.”

도윤은 책상을 바라보았다. 노트북은 충전선에 연결되어 있었다. 책 두 권은 한쪽에 겹쳐놓았고, 검은색 노트는 그 위에 올려두었다. 아침에는 노트를 책 아래에 넣었던 것 같았다. 아니, 유세프와 만나러 갈 때 노트를 꺼냈다가 다시 위에 놓았을 수도 있었다. 기억은 그날의 사건들에 눌려 형태를 잃고 있었다.

“노트 좀 보겠습니다.”

나딤이 말했다. 수사관이 장갑을 낀 손으로 검은 노트를 들었다. 도윤은 어느 페이지를 펴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유세프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인쇄한 종이는 중간 부분에 끼워두었다. 종이는 그대로 있었다. 도윤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

“없어진 게 아니군요.”

나딤이 말했다. 그는 봉투 안에 넣기 전 종이 앞뒤를 사진으로 남겼다.

“이게 뭡니까? 이걸 가지고 있었습니까?”

“어젯밤 유세프가 보여준 기록입니다.”

“박물관 자료입니까?”

“유세프가 출력한 겁니다.”

“왜 조사할 때 말하지 않았습니까?”

질문은 조용했지만 피할 수 없었다. 도윤은 나딤을 바라보았다.

“잊었습니다.”

“그 말을 믿으라고 하는 겁니까?”

“오늘 일어난 일 중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게 많았습니다.”

“이 종이에는 현재 데이터베이스에서 사라진 항목이 남아 있습니다.”

나딤은 인쇄물을 들어 빛에 비춰보았다.

“중요하지 않은 자료는 아닌 것 같군요.”

도윤은 변명하지 않았다. 나딤은 종이를 다시 노트 위에 내려놓지 않았다. 별도의 증거봉투에 넣었다.

“수사기관에서 보관하겠습니다.”

“사본은 받을 수 있습니까?”

“확인 후에요.”

도윤은 종이가 수사관에게 넘겨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나딤이 물었다.

“이 종이를 어디에 끼워뒀습니까?”

“노트 가운데입니다.”

“정확한 페이지는요?”

도윤은 노트를 받아 직접 펼치지 않고 수사관이 넘기는 것을 지켜보았다. 페이지 아래쪽에는 날짜별 메모가 있었다. 인쇄물을 넣어둔 곳은 11월 10일의 기록과 11월 11일의 기록 사이였다. 그러나 지금은 11월 8일과 9일 사이에 끼워져 있었다.

“여기가 아닙니다.”

“확실합니까?”

“네.”

이번에는 확실히 기억났다. 전날 밤 유세프의 설명을 들으며 적은 메모 바로 다음에 인쇄물을 넣었다. 화면에서 항목이 사라졌던 순간을 함께 기록해두었기 때문이다. 나딤이 수사관에게 페이지 전체를 촬영하게 했다.

“노트를 가방 안에 넣어두었습니다.”

도윤이 말했다.

“가방이 아니라 책상 위에 있었는데요.”

“아뇨. 아침에 나갈 때 가방에 넣었습니다.”

도윤의 시선이 여행가방 옆에 놓인 검은 백팩으로 향했다. 가방의 지퍼는 닫혀 있었다. 그러나 지퍼 손잡이 두 개가 한가운데에서 맞닿아 있었다. 도윤은 늘 한쪽 끝까지 밀어 닫았다. 두 손잡이를 가운데에 모으면 걷는 동안 조금씩 벌어지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소한 습관을 설명했다. 나딤은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았다. 대신 가방 전체를 촬영하고 지퍼와 손잡이에서 지문을 채취하게 했다. 주원이 문밖에서 말했다.

“제 방도 확인하시죠.”

주원의 객실에는 불이 켜져 있지 않았다. 전자출입기록에도 외부 카드가 사용된 흔적이 없었다. 그래서 아무 일도 없었던 방처럼 보였다. 주원은 문밖에서 방 안을 살피다가 책상 쪽을 가리켰다.

“카메라 가방이 열려 있습니다.”

지퍼는 닫혀 있었지만 상단 덮개가 조금 들려 있었다. 주원이 나갈 때는 덮개를 스트랩 아래에 끼워두었다고 했다.

수사관이 가방을 열었다. 카메라와 렌즈 두 개, 충전기, 휴대용 저장장치가 모두 있었다. 현금이 든 작은 지갑도 손대지 않은 상태였다. 주원이 말했다.

“메모리카드를 봐주십시오.”

카메라의 카드 덮개가 열렸다. 카드 두 장이 각각 슬롯에 꽂혀 있었다. 주원이 화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나딤이 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첫 번째 슬롯에는 사진용 V90 고속 SD카드를 넣고, 두 번째에는 백업용 V30 SD카드를 넣습니다. 지금은 반대로 꽂혀 있어요.”

“카메라가 정상적으로 작동합니까?”

“작동은 하겠죠.”

“카드가 움직였다는 것은 어떻게 확신합니까?”

주원은 첫 번째 카드의 작은 흠집을 가리켰다.

“이 카드는 늘 2번 슬롯에 넣습니다. 오래 써서 구분할 수 있어요.”

수사관이 카드를 봉투에 따로 넣었다.

노트북과 휴대용 저장장치는 그대로였다.

“사진이 삭제됐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나딤의 말에 주원이 대답했다.

“최근 촬영한 건 유세프의 발표장과 박물관 외부뿐입니다.”

“유물사진은요?”

“보존연구동에서는 촬영을 못 했습니다.”

“발표자료는 찍었습니까?”

“일부는요.”

“회색 정장의 남자도?”

주원은 잠시 생각했다.

“객석 전경에 들어갔을 수도 있습니다.”

태겸의 객실에서는 가장 먼저 책상 위의 종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손으로 적은 메모를 날짜순으로 쌓아두었다. 가장 최근 기록을 위에 놓고, 페이지 오른쪽 위에 작은 숫자를 적는 습관이 있었다. 지금은 순서가 반대였다. 첫날 카이로에 도착하며 적은 기록이 위에 놓여 있었고, 유세프의 발표에서 받아 적은 내용은 맨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누군가 정리해 준 모양이네.”

주원이 말했다. 태겸은 웃지 않았다.

“청소 직원이라면 종이 내용을 읽으면서 날짜순으로 다시 쌓지는 않았겠지.”

수사관이 메모를 한 장씩 촬영했다. 빠진 페이지는 없었다. 태겸의 노트북과 필기구, 작은 녹음기도 그대로 있었다. 서랍 안쪽의 현금과 여권 사본도 손대지 않은 상태였다. 태겸은 자신의 번역노트를 확인했다. 한 페이지의 모서리가 접혀 있었다.

“여기는 원래 접혀 있었습니까?”

나딤이 물었다.

“아닙니다.”

접힌 페이지에는 19세기 발굴문서에서 반복되는 출처 관련 약어들을 정리한 표가 있었다. 세미나 발표를 위해 서울에서 작성한 자료였다. 그 안에 ABY라는 약어도 있었다. 다만 특정한 숫자나 검은 카르투슈와 연결된 내용은 아니었다.

“이걸 찾은 걸까?”

주원이 물었다. 태겸은 접힌 모서리를 바라보았다.

“찾은 사람이 원하는 게 뭔지부터 모르겠어.”

도윤이 말했다.

“가져간 게 아니라 확인한 거겠지.”

나딤이 그를 보았다.

“무엇을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료요.”

도윤은 세 방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유세프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줬는지. 우리가 기록을 얼마나 남겼는지. 누가 사진을 찍었고 누가 문장을 옮겨 적었는지.”

“그러면 왜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습니까?”

“가져갈 필요가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주원이 말했다.

“전부 복사했으면.”

객실에 남겨진 노트북과 저장장치는 그 자리에서 간단한 검사를 받았다. 도윤의 노트북에는 로그인 흔적이 없었다. 전원이 켜진 기록도 없었다. 태겸의 노트북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주원의 카메라 메모리카드에는 이상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수사관이 휴대용 판독기에 카드를 연결하자 마지막 접근시각이 표시되었다. 오후 7시 41분. 그 시각 도윤 일행은 모두 박물관 행정동 조사실에 있었다.

“사진을 열었던 흔적입니까?”

주원이 물었다. 기술요원이 화면을 확인했다.

“파일 구조를 읽었던 흔적입니다. 개별사진을 모두 열었는지는 확인해 봐야 합니다.”

“사진을 복사했는지도 알 수 있습니까?”

“아뇨. 복사 기록이 남지는 않습니다.”

다행히도 카드 안에 있던 사진의 수는 변하지 않았다. 다만 무엇이 복사됐는지, 복사 자체가 이루어졌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누군가 카드를 빼내 다른 장치에 연결한 뒤, 슬롯을 바꿔 다시 꽂아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나딤은 보안책임자에게 물었다.

“오후 7시 41분, 2층 출입 기록을 한 번 더 확인하십시오.”

“외부 출입은 없습니다.”

“객실문 기록은요?”

보안책임자는 태블릿 화면을 넘겼다.

“도윤 박사님의 방은 오전 청소카드 기록 이후에는 외부카드 사용이 없습니다. 태겸 박사님 방도 같습니다. 그리고…주원 박사님 방은 아침에 나간 뒤 카드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그럼, 안에 있던 사람이 나온 기록은요?”

“무슨 뜻입니까?”

“전자잠금장치는 내부 손잡이를 사용하는 것도 기록합니까?”

보안책임자의 손가락이 멈췄다. 그는 별도의 메뉴를 열었다. 잠시 뒤 표정이 달라졌다.

“기록이…있습니다.”

“보여주십시오.”

첫 번째 기록은 오후 7시 38분이었다.

ROOM 314 — INTERIOR HANDLE OPEN

도윤의 방. 문은 4초 뒤 닫혔다.

다음은 오후 7시 43분.

ROOM 315 — INTERIOR HANDLE OPEN

주원의 방. 6초 뒤 닫힘.

마지막은 오후 7시 48분.

ROOM 316 — INTERIOR HANDLE OPEN

태겸의 방. 5초 뒤 닫힘.

주원이 태블릿을 들여다보았다.

“누군가 세 방 안에 있었다는 뜻입니까?”

보안책임자는 곧바로 답하지 못했다.

“내부 손잡이를 사용한 것으로 감지됐다는 뜻입니다.”

“복도 cctv에는 찍혔겠군요.”

나딤이 말했다. 그들은 3층 보안영상을 확인하기 위해 로비의 작은 관리실로 내려갔다. 오후 7시 30분부터 영상이 재생됐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카펫 위에 떨어지는 조명과 닫힌 객실문만 보였다. 7시 38분. 도윤의 방문이 조금 열렸다. 문틈은 사람 한 명이 나올 정도로는 넓어지지 않았다. 안쪽에서 누군가 복도를 살피기라도 하듯 살짝 열렸다가 다시 닫혔다. 사람의 얼굴도 나타나지 않았다.

7시 43분. 주원의 방문이 같은 방식으로 열렸다가 닫혔다. 7시 48분. 태겸의 문도 열렸다. 세 번째 문은 조금 더 오래 열려 있었다. 문 안쪽은 어두웠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나딤이 영상을 멈췄다.

“복도 반대편 카메라는요?”

“카메라는 이것 하나뿐입니다.”

“계단과 엘리베이터 카메라 좀 봅시다.”

다른 영상을 확인했다. 해당 시간대에 3층으로 올라오거나 내려간 사람은 없었다. 비상계단 문도 열리지 않았다.

“객실 사이에 연결문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발코니는요?”

“각 방의 창밖에 설비점검용 난간이 이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외부에서 열 수 없는 창입니다.”

“옥상에서 내려갈 수 있습니까?”

보안책임자는 대답을 망설였다.

“장비가 있다면 가능은 하겠지만, 바깥에서 보였을 겁니다. 사람들의 의심을 사겠죠.”

주원이 화면을 가리켰다.

“방 안에 있던 사람이 문을 열어 복도를 확인하고, 창을 통해 다음 방으로 이동한 것처럼 보여요.”

“그건 추측입니다.”

나딤이 말했다.

“지금은 모든 게 추측이죠.”

주원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영상이 다시 재생됐다. 도윤의 문. 주원의 문. 태겸의 문. 정확히 5분의 간격을 두고 하나씩 열렸다가 닫혔다. 어떤 방에서도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간. 살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딤은 관리실을 나가 받았다가 곧바로 스피커를 켰다.

“유세프의 연구실을 확인했습니다.”

살마의 목소리는 낮았고, 주변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경찰이 낮에 한 번 수색했는데 무엇을 찾았는지는 모릅니다. 조금 전 연구자료 목록을 작성하라고 해서 들어갔어요.”

“뭔가 없어졌습니까?”

나딤이 물었다.

“없어진 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살마는 말을 이었다.

“노트북도, 시료보관함도 그대로입니다. 현미경 사진과 분석표도 있어요.”

“그런데요?”

“누군가 전부 열어봤습니다.”

“어떻게 압니까?”

“유세프는 서랍 안의 문서를 세로로 꽂지 않습니다. 항상 눕혀놓아요. 종이 가장자리가 구부러지는 걸 싫어했거든요. 지금은 절반이 세워져 있습니다.”

살마는 연구실 안을 걸으며 확인하는 듯했다.

“시료보관함의 봉인테이프도 떼었던 모양인지 전부 새 걸로 바뀌어 있어요. 같은 종류지만 제조번호가 달라요. 파일상자는 위치가 바뀌었고, 책장에 있던 도록 두 권은 순서가 뒤집혔습니다.”

“어떤 도록입니까?”

도윤이 물었다. 살마는 제목을 읽어주었다. 둘 다 20세기 초 카이로 남부 수장고로 들어온 출처 미상 유물에 관한 자료였다. 유세프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흑백사진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었다. 나딤이 물었다.

“저장장치는요?”

“없습니다.”

“원래 없었습니까?”

“유세프가 가지고 다니던 검은 저장장치를 말하는 거라면, 연구실에 보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 외에 없어진 것은요?”

“없어요.”

살마가 잠시 말을 멈췄다.

“찾지 못한 것 같아요.”

“무엇을요?”

“글쎄요. 그걸 알았다면 나도 찾았겠죠.”

전화 너머에서 서랍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 방을 뒤진 누군가는 유세프가 무엇을 숨겼는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책상과 서랍, 시료함을 전부 열었습니다.”

도윤이 말했다.

“우리 방도 같습니다.”

살마의 숨소리가 잠깐 멈췄다.

“숙소에도 들어왔습니까?”

“네. 그러나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여기도요.”

서로 다른 장소에서 찾는 물건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이 존재하는지부터 확인하려는 것처럼 같은 방식의 수색이 이루어졌다. 유세프의 연구실. 도윤과 주원, 태겸의 객실. 돈도, 장비도, 여권도 그대로였다. 나딤이 물었다.

“연구실 출입기록은요?”

“경찰이 봉인하기 전에는 야간 출입기록이 없습니다.”

“내부 손잡이 기록은 있습니까?”

“연구실 문에는 그런 장치가 없어요.”

“영상은요?”

“복도 카메라가 새벽 2시부터 3시 반까지 저장 오류를 일으켰습니다.”

주원이 낮게 웃었다. 아무도 그 웃음을 유쾌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에도 오류군.”

“연구실에서 아무것도 만지지 마십시오. 지금 인력을 보내겠습니다.”

그는 전화를 끊은 뒤 도윤 일행을 바라보았다.

“여러분도 오늘 밤 다른 장소로 옮기는 편이 좋겠습니다.”

“어디로요?”

주원이 물었다.

“경찰이 숙소를 마련하겠습니다.”

“그곳은 안전합니까?”

“안전하다고 확실하게 약속할 수는 없습니다.”

“솔직하군요.”

“지금은 그게 낫잖습니까?”

나딤은 수사관에게 이동준비를 지시했다. 도윤이 말했다.

“누군가 우리가 박물관에 붙잡혀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나딤의 움직임이 멈췄다.

“숙소를 비운 시간도요.”

“맞습니다. 그리고 유세프의 연구실을 언제 수색할 수 있는지도 알았고요.”

태겸이 덧붙였다. 주원이 관리실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화면 속에서 세 개의 문이 차례로 열리고 있었다.

“박물관 안의 누군가겠군.”

나딤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단정하지 마십시오.”

“그럼, 재단입니까?”

“그것도 단정하지 마십시오.”

“경찰은요?”

이번에는 나딤이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주원은 그 침묵을 놓치지 않았다.

“수사관님도 우리를 완전히 믿지 않죠?”

“그렇습니다.”

나딤의 대답은 예상보다 빨랐다.

“여러분은 유세프의 미공개 연구자료를 보았고, 박물관에서 출력한 문서를 숨겼습니다. 카림은 하산의 수첩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밝혔고요. 저는 아직 누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우리가 스스로 방을 뒤지기라도 했다는 겁니까?”

도윤이 물었다.

“그런 뜻은 아닙니다.”

“우리가 피해자인지 아닌지도 확신하지 않는군요.”

“네. 확신은 없습니다.”

나딤은 도윤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다만 여러분이 방에 없던 시각에 메모리카드가 열렸고, 세 객실의 문이 안쪽에서 차례로 열렸다는 기록은 확인했습니다.”

그의 시선이 모니터로 향했다.

“누가 들어갔는지는 모릅니다. 어떻게 들어갔는지도 모고요. 무엇을 찾았는지는 더더욱 모릅니다.”

마지막 객실문이 화면 속에서 닫혔다.

“다만 확실한 것은 하나뿐입니다.”

나딤이 말했다.

“그 사람은 여러분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주원이 물었다.

“다음에는 가져가려나요?”

나딤은 대답하지 않았다. 도윤은 화면 속 닫힌 문들을 바라보았다. 유세프가 죽은 뒤 그의 이름으로 자료가 열렸고 하산의 수첩 내용이 보관된 계정에 누군가 접속하려 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이제 자신들의 방과 가방, 메모와 사진까지 전부 들여다보았다.

도둑이라면 실패한 침입이었지만 상대가 훔치러 온 것이 아니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그들은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대신 누군가는 도윤 일행이 가진 것을 모두 세어보고 돌아갔다.

Leave a Reply

Discover more from 은호의 서재

Subscribe now to keep reading and get access to the full archive.

Continue re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