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2025년 11월 12일, 기자

오전 11시가 되기 전에 박물관 내부망에 유세프 라티프 사고 관련 임시보고서가 올라왔다. 작성자는 안전관리팀과 보존연구동이 공동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제목은 미정이었으나 내용은 이미 단정적이었다.

야간 단독작업 중 안전규칙 위반. 사전승인 없는 무산소 처리장치 수동 가동. 경보장치 임의 해제. 작업자 내부 잔류 상태에서 질소주입. 저산소증에 의한 의식상실 및 사망 추정. 사람은 아직 검시기관으로 옮겨지기 전인데 죽음에는 벌써 원인과 책임자가 생겨 있었다. 그리고 그 책임자는 죽은 사람이었다.

보존연구동과 떨어진 행정동의 작은 회의실. 나딤 파흐미는 임시보고서를 끝까지 읽었으나 표정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서도윤과 한주원, 윤태겸은 한쪽 끝에 앉아 있었다. 살마는 맞은편에서 팔짱을 낀 채 보고서를 바라보았고, 카림은 의자에 등을 기대지도 못한 채 끝에 살짝 걸터앉아 있었다.

회의실에는 박물관 안전관리책임자와 전산이관팀장, 보안실 직원도 들어와 있었다. 모두 보고서가 자신의 부서에서 작성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나딤은 마지막 장을 덮었다.

“이 문서는 몇 시에 작성됐습니까?”

안전관리책임자가 서류를 확인했다.

“오전 9시 42분에 초안이 생성됐습니다.”

“사망 확인 시각은요?”

“9시 27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15분 만에 사고원인을 확인했군요.”

“확인한 것이 아니라 자동으로 생성된 임시보고서입니다.”

“자동 생성이라. 무엇을 근거로요?”

“작업설비 작동 기록과 출입정보, 안전확인 절차가 서로 연동돼 있습니다. 사고발생 시 시스템이 자료를 불러와 기본양식을 작성합니다.”

“그러면 사람의 역할은 뭡니까?”

안전관리책임자는 질문의 뜻을 잠시 생각했다.

“담당자가 사실관계를 검토하고 필요시 수정합니다.”

“그럼, 이 보고서는 수정됐습니까?”

“아직 아닙니다.”

나딤은 첫 장을 다시 펼쳤다.

“아직은 아니다…그런데 이미 내부망에 배포됐습니다.”

“긴급사고가 발생하면 관련 부서가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보고서를 통해 관련 부서가 무엇을 알게 됐습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나딤은 보고서의 한 문장을 손끝으로 두드렸다. 작업자가 경보장치를 임의로 해제함.

“이 문장 말입니다. 누가 임의로 해제했다는 겁니까?”

전산이관팀장이 말했다.

“기록상 유세프 박사 계정입니다.”

“유세프의 손이 버튼을 누르는 것을 본 사람이 있습니까?”

“전자기록이 있습니다.”

“제 질문은 그게 아닙니다.”

나딤이 고개를 들었다.

“유세프 라티프가 직접 했다는 것을 봤거나 확인했냐는 말입니다.”

“계정과 출입증은 본인이 사용합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그 계정은 어젯밤 박물관 반대편에서도 사용됐다고 들었습니다.”

전산이관팀장의 입술이 잠깐 굳었다.

“그 부분은 인증정보 중복 문제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능성입니까, 확인된 사실입니까?”

“조사 중입니다.”

“그런데 이 보고서에서는 조사 중이라고 쓰여 있지 않군요.”

나딤이 문서를 탁자 가운데로 밀었다.

“누군가 사망한 뒤 그 사람의 계정으로 만들어진 기록만으로 그가 사망한 원인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사망 확인 15분 만에.”

안전관리책임자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수사관님, 저희도 이 사고를 결코 가볍게 보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설비는 모든 것을 기록합니다. 유지보수 모드로 전환된 기록, 경보가 해제된 기록, 질소주입 시작 기록까지…전부 유세프 박사의 권한으로 처리됐습니다.”

살마가 낮게 말했다.

“그게 문제입니다. 그건 한 사람의 권한만으로는 불가능해요.”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야간에 무산소 처리를 수동으로 시작하려면 두 개의 권한이 필요합니다. 보존과학 책임권한과 야간 보안책임권한.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경보는 해제되지 않아요.”

나딤이 물었다.

“두 번째 권한은 누구의 것입니까?”

보안실 직원이 안전관리책임자를 바라보았다. 나딤은 그 작은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말씀하십시오.”

보안실 직원이 마른침을 삼켰다.

“야간 보안공용 계정이 사용됐습니다.”

“공용 계정?”

“당직자가 교대할 때 사용하는 권한입니다. 개인출입증을 기반으로 접속하지만, 설비기록에는 공용 사용자명으로 표시될 수 있습니다.”

“어젯밤 당직자는 누구였습니까?”

“두 명입니다.”

“둘 중 누가 승인했습니까?”

“그게……”

직원은 말을 멈췄다.

“기록이 없습니까?”

“승인 시각은 있습니다.”

“승인자는요?”

“개인출입증 정보가 남지 않았습니다.”

나딤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

“유세프의 계정에는 이름이 남고, 함께 사용된 보안권한에는 이름이 남지 않았다.”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그런데 보고서에는 유세프가 혼자 규정을 위반했다고 쓰였군요.”

안전관리책임자가 말했다.

“자동양식의 문제입니다.”

“그 자동양식이라는 거…누가 설계했습니까?”

전산이관팀장이 대답했다.

“마아트 재단 기술협력사가 구축했습니다.”

카림이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 회사 이름이 뭡니까?”

팀장은 잠시 뜸을 들이다 이내 나딤을 똑바로 바라보며 반문했다.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팀장의 말에 카림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제 형이 죽은 지 두 시간도 안 됐는데,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프로그램이 형이 자기 실수로 죽었다고 문서를 작성했습니다.”

카림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다. 그 때문에 오히려 회의실 안에서 더 또렷하게 들렸다. 그는 탁자 위의 임시보고서를 바라보았다.

“중요하냐고요? 중요하지 않을 건 뭡니까?”

팀장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나딤이 문서를 회수했다.

“이 보고서는 즉시 내부망에서 내리십시오.”

안전관리책임자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열람한 직원들이 있습니다.”

“그래요. 열람한 사실까지 없앨 수는 없겠죠. 그러나 수정되지도 않은 보고서가 마치 공식설명처럼 돌아다니는 것을 가만히 둘 수는 없습니다.”

“상부의 승인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그 승인을 받으십시오.”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나딤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유세프 라티프의 사망 이유를 알아내는 데는 더 오래 걸릴 겁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런데 왜 그 사람이 잘못했다는 설명만 이렇게 빨리 완성되는지, 저는 그 점부터 조사할 생각입니다.”

검시기관에서 첫 연락이 온 것은 정오가 조금 지난 뒤였다. 정식 부검 결과는 아니었다. 외표검사와 현장기록을 바탕으로 한 예비소견이었다.

유세프의 몸에는 치명상이 없었다. 오른쪽 관자놀이의 붉은 흔적은 의식을 잃으며 바닥이나 운반대에 부딪혀 생겼을 가능성이 높았다. 목이나 손목에서 결박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저산소 상태에서 나타날 수 있는 소견들이 있었고, 현재로서는 질소에 의한 산소결핍이 직접적인 사인으로 가장 유력했다.

살해를 증명하는 흔적이나 사고를 증명하는 흔적은 없었다. 다만 무산소실 내부의 산소 농도 변화는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오후 11시 58분, 질소주입 시작. 12시 13분, 산소 농도 10퍼센트 이하. 12시 27분, 3퍼센트 이하. 12시 31분, 2퍼센트 이하…

사람이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살마는 설비기록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산소 농도가 10퍼센트 아래로 내려가면 판단력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더 낮아지면 자신이 위험하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할 수 있어요.”

나딤이 물었다.

“유세프가 이미 안에 있었다면…언제까지 문을 열 수 있었습니까?”

“질소가 들어오기 시작한 직후라면 가능합니다. 하지만 내부문을 직접 열 수 없게 설정할 수도 있습니다.”

“어젯밤에는 어떻게 설정됐습니까?”

시설관리자가 대답했다.

“내부 해제 금지 상태였습니다.”

카림이 그를 바라보았다.

“안에 사람이 있는데요?”

“장비 점검용 설정입니다. 사람이 내부에 없다는 전제에서 사용하는 모드입니다.”

“누가 그렇게 바꿨습니까?”

시설관리자는 기록을 내려다보았다.

“유세프 박사 계정입니다.”

카림은 웃지 않았지만, 입에서 마른 숨이 새어 나왔다.

“또 형이군요.”

그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한 번 쓸었다.

“모든 걸 형이 했다고 하네요.”

나딤은 산소농도 표 옆에 다른 문서를 놓았다.

“하지만 유세프가 무산소실 안에서 정상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던 시간은 자정 전후까지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도윤이 문서 상단을 보았다. 박물관 시스템 접속기록이었다. 나딤이 첫 번째 줄을 가리켰다.

00:43 Y. LATIF CONSERVATION ARCHIVE SERVER

“12시 43분, 유세프 계정이 보존과학 자료서버에 접속했습니다.”

살마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 시각에는 이미 산소 농도가 2퍼센트 아래였습니다.”

“그…자동 동기화 아닙니까?”

전산이관팀장이 물었다. 나딤은 다음 줄을 가리켰다.

01:18 Y. LATIF HERITAGE INTEGRATION TEST SERVER

“1시 18분, 통합기록 시험서버에 접속했습니다.”

세 번째 줄.

03:06 Y. LATIF OFFICE TERMINAL C217

“새벽 3시 6분, 유세프의 연구실 단말기에서 다시 접속했습니다.”

회의실 안이 조용해졌다. 카림은 기록지를 바라보면서도 내용을 받아들이지 못한 듯했다.

“형이 저 방 안에 있었는데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형의 출입증도 몸에 있었다면서요.”

나딤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전화는 동쪽 행정동에 있었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계정은 세 군데를 돌아다녔다.”

나딤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는 세 차례 접속했습니다.”

주원이 물었다.

“계정으로 무엇을 했습니까?”

나딤은 전산이관팀장을 바라보았다. 팀장은 내키지 않는 듯 노트북 화면을 회의실 모니터에 연결했다. 접속기록의 세부내용이 나타났다. 첫 번째 접속에서 열람된 것은 검은 표면처리 분석자료였다. 두 번째 접속에서는 통합기록의 이전 출처와 수정이력이 조회되었다. 세 번째 접속에서는 유세프의 연구실 컴퓨터에 저장된 최근 작업목록이 삭제되었다. 도윤이 물었다.

“어떤 파일이 없어졌습니까?”

팀장은 목록을 열었다. 여섯 개의 파일명이 나타났다.

BLACK_LAYER_COMPARISON_01(검은 층 비교)

LEGACY_PROVENANCE_SET_A(유물 출처 set A)

LEGACY_PROVENANCE_SET_B(유물 출처 set B)

SN–03_SURFACE_DATA(SN-03 표면 자료)

SN–03_LOCATION_REFERENCE(SN-03 위치 참조)

ACCESS_LOG_PERSONAL(개인 접속 기록)

살마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위치자료가 있었습니까?”

“파일명만 확인됩니다.”

“유세프가 세 번째 표본의 위치를 따로 기록했다는 뜻입니까?”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삭제된 파일을 복구할 수 있습니까?”

전산이관팀장이 말했다.

“백업 여부를 확인 중입니다.”

살마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 대답은 어제도 들었습니다.”

“서버 구조가 복잡합니다.”

“복잡해서 기록이 사라진 겁니까, 아니면 사라지게 하려고 복잡하게 만든 겁니까?”

팀장이 얼굴을 붉혔다.

“지금 저희를 범인 취급하시는 겁니까?”

“모르죠. 누가 범인일지.”

살마가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다만 유세프가 죽어가던 시간에 누군가 유세프 이름으로 유세프의 연구를 정리했다는 것은 확실하네요.”

나딤이 말했다.

“삭제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가 접속내역 아래쪽을 확대했다. 두 번째 접속과 세 번째 접속 사이, 외부전송 기록이 하나 있었다.

02:24 — EXPORT PACKAGE CREATED

수신주소는 비어 있었다. 전송용량은 684메가바이트. 파일 수는 열세 개였다.

“무엇이 들어 있었습니까?”

태겸이 물었다.

“목록이 없습니다.”

“그러면 전송됐다는 사실만 남았군요.”

“그렇습니다.”

“어디로 보냈는지도 모르고.”

“현재까지는 그렇습니다.”

전산이관팀장이 끼어들었다.

“자동 백업일 수 있습니다. 통합서버에서는 일정한 주기로 자료묶음을 생성합니다.”

나딤이 화면을 바꿨다. 전송파일을 만들 때 입력된 검색어가 나타났다. 자동화된 명령어와는 달리, 사람이 직접 입력한 짧은 문구들이었다.

SN–03

FIRST PROVENANCE

ABY–17

도윤은 마지막 문구에서 시선을 멈췄다.

‘ABY–17.’

처음 보는 기호였지만, 앞의 세 글자가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아비도스. 유세프가 보여준 최초의 검은 카르투슈 파편도 공식적으로는 아비도스 출토품이었다. 도윤이 물었다.

“ABY–17이라는 분류번호가 있습니까?”

전산이관팀장이 검색창에 입력했다.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현재 등록체계에는 없습니다.”

“ABY면 아비도스를 뜻하는 것 같은데…옛 번호일 가능성은요?”

“형식이 다릅니다. 아비도스 출토품은 보통 기관 약호와 연도, 일련번호를 조합합니다. 이것만으로는 정식 등록번호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태겸이 말했다.

“현장 분류기호일 수도 있겠군요.”

“그럴 수 있겠습니다.”

“유세프의 자료에서 이 문구를 본 적 있습니까?”

나딤이 살마에게 물었다. 살마는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카림 씨는요?”

카림은 화면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처음 봅니다.”

나딤의 시선이 도윤과 주원, 태겸에게 차례로 옮겨왔다. 세 사람 모두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산이관팀장이 말했다.

“검색어가 사람이 직접 입력한 것처럼 보이더라도, 복구과정에서 과거의 실행기록이라던가 아니면 입력 데이터가 다시 실행됐을 수 있습니다.”

주원이 낮게 물었다.

“결국은 또 통합이니 동기화니 그런 거겠네요?”

“기술적인 가능성을 말하는 겁니다.”

“사망한 뒤 자신의 이름으로 파일을 열고, 내보내고, 지운 것도 기술적인 가능성이고요?”

“그럴 수 있으니까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럼, 원래 사람이 없어도 계정은 알아서 돌아다닙니까?”

팀장이 주원을 노려보았다. 나딤이 둘 사이를 가로막듯 말을 이었다.

“자, 현재로서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는 손가락을 하나 들었다.

“유세프가 살아 있을 때 설정해둔 자동작업이 사후에 실행됐다.”

그는 천천히 두 번째 손가락을 펴 보였다.

“누군가 유세프의 인증정보를 사용했다.”

“어느 쪽이 더 가능성이 높습니까?”

카림이 물었다.

“아직 말할 수 없습니다.”

“역시나.”

“성급하게 결론을 말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카림은 턱을 굳힌 채 나딤을 바라보았다. 나딤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다만 한가지, 자동작업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가 모니터의 검색어를 가리켰다.

“일단, 검색어의 입력 간격이 일정하지 않습니다. 오타가 한 번 있었고, 지운 뒤 다시 입력한 흔적도 있습니다.”

화면을 확대하자 입력이력 하나가 나타났다.

ABT–17

삭제.

다시 입력.

ABY–17

누군가 자판을 잘못 눌렀다가 바로잡았다.

유세프의 개인물품이 카림에게 전달된 것은 오후 두 시를 넘긴 뒤였다. 정확히는 돌려받은 것이 아니라 수사에 필요한 물품을 제외한 나머지를 확인하게 해준 것이었다. 휴대전화와 출입증은 증거로 보관됐다. 옷과 지갑, 열쇠도 아직 검시기관과 수사기관 사이에 있었다. 카림이 볼 수 있었던 것은 무산소실에서 발견된 종이 몇 장과 안경집, 손수건, 동전 몇 개였다.

나딤은 각각을 투명봉투에 넣은 상태로 탁자 위에 놓았다.

“직접 만지지는 마십시오.”

카림은 안경집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유세프는 먼 곳을 볼 때만 안경을 썼다. 어머니가 텔레비전을 가까이에서 보지 말라고 말할 때면 자신은 눈이 나쁜 게 아니라 세상이 지나치게 작게 쓰여 있다고 대꾸하곤 했다. 카림은 그 말을 회상하다가 곧바로 밀어냈다. 나딤이 종이봉투 하나를 가리켰다.

“주머니에서 발견된 것들입니다.”

첫 번째는 박물관 구내식당 영수증이었다. 날짜는 전날, 결제시각은 오후 5시 48분. 두 번째는 세미나 일정표의 일부였다. 유세프의 발표시간과 오후 회의 일정에 펜으로 줄이 그어져 있었다. 세 번째는 오래된 도록에서 뜯어낸 것으로 보이는 작은 인쇄물이었다.

도윤이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 황갈색 석재 파편의 흑백사진이었다. 세로로 긴 카르투슈가 있었고 안쪽은 검게 덮여 있었다. 전날 밤 유세프가 보여준 유물과 닮았지만 같은 물건은 아니었다. 파손면과 주변 인물상의 방향이 달랐다. 사진 아래에는 인쇄된 설명이 있었다.

‘출토지 미상. 20세기 초 카이로 남부 수장고 이관품. 현 소재 불명.’

사진의 오른쪽 아래에는 연필로 짧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ABY–17

나딤이 물었다.

“유세프의 필체입니까?”

카림은 봉투 가까이 얼굴을 가져갔다.

“아마 맞을 겁니다.”

“확실하지 않습니까?”

“형은 급하게 쓸 때 글씨가 달라져요.”

도윤이 사진을 살폈다. 유물의 등록번호가 있어야 할 부분은 잘려 있었다. 도록의 원래 페이지에서 사진과 설명만 뜯어낸 듯했다.

“뒷면을 볼 수 있습니까?”

나딤이 봉투를 뒤집었다. 뒷면에는 다른 문장이 적혀 있었다.

‘목록에 없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태겸이 읽은 뒤 말했다.

“유세프가 쓴 문장이야?”

카림은 고개를 저었다.

“저 글씨는 형의 필체가 아니야.”

“그러면 누구의 것일까?”

카림은 다시 자세히 보았다. 연필은 오래전에 눌러쓴 듯 색이 옅었고, 필체는 유세프의 것보다 각이 져 있었다. 일부 알파벳은 현대식 필기체와 조금 달랐다.

“아버지 글씨와 비슷해.”

하산 라티프. 그 이름이 회의실 안에 잠시 적막이 돌았다. 나딤이 물었다.

“하산 라티프가 이 사진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입니까?”

“모르겠습니다.”

“유세프가 아버지의 자료를 보관했습니까?”

“일부는요.”

“일부만?”

카림의 입술이 다물렸다. 도윤은 카림이 무엇인가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딤 역시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러나 곧바로 추궁하지 않았다.

“이 사진이 실린 도록을 찾을 수 있을까?”

태겸이 물었다. 도윤은 사진 아래 남은 활자와 용지의 질감을 보았다.

“가능할 거야. 페이지 구성과 인쇄방식이 남아 있으니까. 적어도 발행시기는 좁힐 수 있겠지.”

주원이 사진 속 석재의 뒷면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현재 소재 불명이라는 건 언제부터 사라졌다는 뜻이지?”

“도록이 발간될 때 이미 위치를 알 수 없었다는 뜻이겠지.”

태겸이 말했다.

“그런데 기록을 보면 ABY–17이라는 기호가 검색에 사용됐어.”

“그렇다면 유세프는 이 사진이 어디 있는지 알아냈을 수도 있어.”

도윤이 말했다. 나딤은 사진을 다시 앞면으로 돌렸다.

“또는 누군가 유세프가 알아냈는지 확인하려 했을 수도 있습니다.”

검게 덮인 카르투슈가 투명봉투 너머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라진 왕의 이름이 아니라, 사라진 물건의 사진이었다.

레온 바이스가 회의실로 들어온 것은 그들이 사진을 확인한 직후였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마아트 재단의 법률담당자와 보안감사 책임자가 동행했다. 그러나 두 사람을 문밖에 기다리게 한 뒤 레온만 안으로 들어왔다. 나딤이 먼저 말했다.

“수사 중인 자료입니다.”

레온은 탁자 위의 증거봉투를 보지 않았다.

“자료를 확인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그는 카림에게 다가갔다.

“애도를 표합니다.”

카림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오전에도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레온은 그 반응을 무례하다고 여기지 않는 듯했다.

“그때는 살아 있는 사람을 찾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카림의 눈이 흔들렸다. 레온은 더 말을 붙이지 않았다. 그가 나딤에게 서류 한 장을 건넸다.

“재단 명의로 통합기록 시스템과 협력업체 서버의 원본 로그를 보존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관련 데이터의 자동 삭제와 덮어쓰기도 중지했습니다.”

나딤이 서류를 받아 들었다.

“수사기관이 요청하기도 전에요?”

“아시다시피 어젯밤부터 문제가 있었으니까요.”

나딤은 레온이 건네준 서류로 시선을 옮겼다.

“협력업체가 어느 회사입니까?”

“헬릭스 아카이브 시스템즈입니다.”

카림이 고개를 들었다.

“사고보고서를 만든 회사가 그 회사입니까?”

“보고서 양식은 그 회사가 구축한 시스템에서 생성됩니다. 내용의 책임은 승인한 기관에 있습니다.”

“그러면 아무도 책임지지 않겠군요.”

“아뇨.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카림의 입가가 굳었다.

“어떻게요?”

“외부 디지털 포렌식팀을 투입하겠습니다. 박물관이나 재단과 이해관계가 없는 기관으로요.”

“그 기관을 누가 고릅니까?”

레온은 잠시 침묵했다.

“그건 수사기관이 선택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딤이 레온을 쳐다보았다.

“재단이 비용을 대는 겁니까?”

“필요하다면 그렇습니다.”

“돈을 낸 사람이 결과를 볼 수 있나요?”

“수사기관이 허락하는 범위에서만요.”

나딤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도윤은 레온을 바라보았다. 레온은 유세프의 죽음을 이용해 자신을 변호하려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재단이 의심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그 의심을 통제하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레온의 시선이 증거봉투 속 사진에 잠시 닿았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으나 도윤은 그가 사진을 보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오래된 등록사진입니까?”

그가 물었다. 나딤이 곧바로 봉투를 뒤집었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레온은 더 묻지 않았다.

“유세프 박사의 연구가 통합기록과 관련돼 있다면, 재단이 가진 모든 자료를 제공하겠습니다.”

살마가 말했다.

“모든 자료라면 수정 전 출처필드도 포함됩니까?”

“원본 데이터가 남아 있다면요.”

“남아 있지 않다면요?”

레온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데이터가 남아 있지 않은 이유부터 확인해야겠지요.”

살마는 웃지 않았다.

“어제 기조연설과 같은 말이군요.”

“어제 제가 한 말이 오늘이라고 달라질 이유는 없습니다.”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달라져서는 안 되고요.”

둘 사이에 짧은 침묵이 생겼다. 레온은 카림에게 명함을 내밀지 않았다. 대신 종이에 번호 하나를 적어 탁자 위에 놓았다.

“가족에게 변호사나 행정지원이 필요하면 이 번호로 연락하십시오. 재단을 믿지 못한다면 비용만 받고 변호사는 직접 선택하셔도 됩니다.”

“왜 이렇게까지 합니까?”

카림이 물었다. 레온은 잠시 생각한 뒤 대답했다.

“유세프 박사는 우리 재단이 지원한 사업에 참여하다 죽었습니다.”

“사고라고 생각합니까?”

“그것을 제가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살해됐다고 생각합니까?”

“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뭐라고 생각합니까?”

레온은 카림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누군가 이미 유세프 박사의 죽음을 설명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시선이 탁자 위의 임시보고서로 향했다.

“진실을 확인하기 전에요.”

카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레온은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회의실을 나갔다. 문이 닫히자 주원이 낮게 말했다.

“저 사람은 마치 우리가 먼저 생각한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자기 입으로 말하는군.”

도윤은 레온이 나간 문을 바라보다가 증거봉투 속 사진으로 시선을 돌렸다. 레온은 사진에 적힌 ABY–17을 보았을까. 나딤이 곧바로 뒤집었기 때문에 확실하지 않았다. 만일 보았더라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는 증거는 없었다.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누군가 유세프의 이름으로 검색한 기호. 하산의 필체로 보이는 문장. 소재를 알 수 없는 검은 카르투슈까지. 모두 아비도스를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누구도 아비도스로 가자고 말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도윤 일행은 숙소로 돌아가지 못했다. 나딤은 카림의 추가진술과 유세프의 개인 연구계정에 관한 확인이 필요하다며 그들을 행정동의 조사실에 남겨두었다. 창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국제세미나는 오후 일정까지 모두 취소됐다. 행사장 화면에 떠 있던 유세프의 발표제목도 내려갔다. 대신 박물관은 ‘사고로 인한 내부 일정 조정’이라는 짧은 공지만 내보냈다.

카림은 조사실 한편에 앉아 휴대전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에게서는 여러 차례 연락이 왔다. 친척과 병원, 박물관 행정팀에서도 메시지가 이어졌다. 카림은 필요한 것에만 짧게 답하고 나머지는 열어보지 않았다. 나딤이 맞은편에 앉았다.

“유세프 박사가 개인적으로 사용한 온라인 저장공간이 있습니까?”

카림은 잠시 생각했다.

“여러 개였을 겁니다.”

“당신이 아는 것은요?”

“가족자료를 보관한 계정이 하나 있습니다.”

“가족사진입니까?”

“아버지의 수첩과 복사문서, 오래된 등록카드 같은 것들입니다.”

도윤이 카림을 보았다. 이것이 그가 낮에 말하지 않은 내용이었다. 나딤이 물었다.

“유세프와 공동으로 사용했습니까?”

“원래는요.”

“지금도 접근할 수 있습니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왜요?”

카림은 휴대전화 화면을 껐다.

“아버지 문제로 형과 싸운 뒤부터 몇 년 동안 들어가지 않았어요.”

“계정 이름은요?”

“라티프 아카이브.”

“비밀번호를 압니까?”

“예전 것은 압니다.”

“이중인증이 설정돼 있습니까?”

“형 전화와 제 번호가 복구수단으로 등록돼 있을 겁니다.”

나딤이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

“당신 번호도요?”

“계정을 만들 때 형이 해외에 자주 갔으니까 휴대전화를 잃어버렸을 때를 대비해 제 번호를 넣었습니다.”

“최근에 로그인 알림을 받은 적은요?”

“없습니다.”

나딤은 수사관 한 명에게 계정정보를 확인하도록 지시했다. 카림은 휴대전화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그 안에 ABY–17이 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하산의 수첩 원본도요?”

카림의 대답이 조금 늦었다.

“일부 페이지의 촬영본은 있을 겁니다.”

“원본은 어디 있습니까?”

카림은 침묵했다. 카림은 친구들의 시선을 느꼈지만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집에 있습니다.”

나딤이 물었다.

“어머니의 집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면요?”

카림은 손가락으로 휴대전화 모서리를 문질렀다.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 조사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나딤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그걸 왜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 사건과 관련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유세프가 아버지의 기록을 연구했고, 그 연구 때문에 누군가의 접근을 의심했습니다.”

“그 수첩이랑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그 수첩에는 이해할 수 없는 번호와 옛 직원 이름밖에 없으니까요.”

“유세프가 보려고 했습니까?”

“그런 경우가 여러 번 있었어요.”

“보여줬습니까?”

카림은 고개를 저었다.

“왜요?”

카림이 나딤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우리 집이 어떻게 됐는지 봤으니까요.”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불안한 듯 손가락은 휴대전화 모서리를 계속 문지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모두가 기록을 바꿨다고 했습니다. 박물관도, 같이 일했던 사람들도, 조사위원회도 전부 거짓말한다고 했어요. 형은 처음에 아버지가 과민반응을 보인다고 생각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야 그 말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은 믿지 않았고요.”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휴대전화가 짧게 진동했다. 카림은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처음에는 가족에게서 온 메시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잠금화면 한가운데 나타난 것은 문자나 전화가 아니었다. 로그인 승인 요청이었다.

‘LATIF ARCHIVE 새로운 장치에서 로그인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계정 소유자가 맞다면 승인하십시오.’

카림의 손이 멈췄다. 도윤이 물었다.

“왜 그래?”

카림은 말없이 휴대전화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모두가 화면을 볼 수 있게 했다. 요청시각은 방금 전이었다. 장치명은 표시되지 않았다. 접속위치는 기자. 나딤이 즉시 말했다.

“누르지 마십시오.”

카림은 화면에 손을 대지 않았다. 승인과 거부 버튼 아래에는 남은 시간이 표시되어 있었다. 나딤은 수사관에게 계정접속 추적을 지시했다. 조사실 한편의 노트북이 열렸고, 기술요원이 카림의 휴대전화 화면을 촬영했다.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나딤이 물었다.

“형과 저뿐입니다.”

“유세프의 휴대전화는 증거보관 중입니다.”

“알아요.”

“다른 복구장치는요?”

“없을 겁니다.”

잠시 뒤. 시간이 다 되자 요청이 사라졌다. 화면에는 다시 잠금화면만 남았다. 카림이 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휴대전화가 다시 진동했다. 같은 계정. 같은 로그인 요청. 이번에는 접속을 시도하는 파일명이 함께 표시되어 있었다.

‘요청된 최근 항목: ABY–17’

조사실 안의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나딤은 휴대전화를 보면서도 손을 대지 않았다. 화면 위에서 숫자가 다시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로그인 요청의 사용자명에는 죽은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YOUSEF LAT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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