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카드 안에는 두 개의 동영상 파일과 두 개의 문서가 들어있었다. 각 파일들의 이름은 숫자로 순서만 표시 되어 있었다. 진혁은 ‘1’이라고 적힌 동영상 파일을 열었다. 동영상이 재생이 되자 매우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대통령이잖아?”
가온은 모니터를 향해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무슨 내용인거지?”
“쉿, 조용히 해봐.”
진혁은 모니터에 눈을 고정해 둔 채로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댔다. 동영상이 재생되는 동안 방 안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이젠 국민 생명과 안전을 후 순위에 뒀던 원전 중심의 발전 전략을 폐기하고 탈핵 시대로 가야합니다…. 먼저 노후 원전을 폐쇄하고 신규 원전 건설 중단 등으로 원전사고 걱정을 해소하겠습니다….”
길지 않은 동영상이 끝나고 진혁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통령께서 후보시절 내걸었던 탈 원전 공약이야.”
가온은 진혁을 바라보았다.
“뭐, 그 당시에 대부분의 후보들이 탈 원전 공약을 내걸었긴 한데, 아무튼 동영상에서 봤겠지만 지금 대통령의 원자력정책 공약은 요약하자면 첫째, 노후 원전 폐쇄 및 신규 원전 중단. 둘째, 40년 후 원전 제로 국가. 셋째, 수명이 남은 원전의 내진 보강. 넷째, 지자체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원자력 안전협의회의 법적 기구화. 다섯째, 원전의 안전 관리 관련 업무의 외주 금지 및 직접 고용 의무화 등이야.”
가온은 진혁의 말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많은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내용이 왜 여기에 담겨 그들의 손에 있었던 걸까요?”
라미는 턱을 괴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일단 여기 남은 파일들을 다 보고 생각해보죠.”
진혁은 ‘2’라고 적힌 동영상 파일을 열었다. 이번 동영상에는 국회의사당 본 회의실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국회 방송…대정부 질문이야.”
진혁이 중얼거렸다. 방안에 있는 세 명 모두 숨을 죽이고 동영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대통령께서는 지난 대선 당시 원자력정책 공약을 내거셨습니다. 당시 대통령께서는 노후 된 원전을 완전히 폐쇄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지금은 노후 된 원전을 다시 수리해서 사용하기로 관계자들과 합의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의원님, 그것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안정성 확인에 따른 재가동으로…”
“네, 확인 감사합니다.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우리 대한민국은 더 이상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나라가 아닙니다. 2016년에는 286번, 2017년 242번 2018년 120번. 연평균 80회의 지진이 일어납니다.”
김준학 의원은 기상청이 2019년 발간한 「2018 지진연보」에 실린 통계자료를 내보였다.
“아무리 안정성 검사를 시행했다 하더라도 만일 지진으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같은 사고가 노후 원전에서 일어난다면 그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지실 것입니까?”
“네, 의원님. 먼저 우리나라의 원전은 경주 지진 실험을 통해 이미 그 안정성을 확인하였습니다. 또한, 의원님께서 걱정하시는 일본의 원전 사고는 지진으로 인한 것이라기보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는 테러로부터 안전한 나라가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나 테러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며, 또한 대한민국은 아직 전쟁 중인 국가로 언제 다시 전쟁이 시작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라입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테러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국민들의 안전을 보장한다고 하실 수 있겠습니까.”
“의원님,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는 의원님께서 걱정하시는 여러 사고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그에 대한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정신없는 정치적 공방이 끝나자 방안을 가득 채우던 날이 선 목소리가 사라지고 침묵이 자리 잡았다.
“이게 지금 무슨 말이야?”
가온의 목소리가 방안의 침묵을 지웠다.
“김준학 의원이 대정부 질문에서 노후 원전 폐쇄 공약 이행에 대한 질문을 한 거야. ‘노후 원전 폐쇄한다더니 왜 안 하냐’라고 물어보는 거지. 근데 다 좋은데, 이 당시 갑자기 뜬금없이 테러에 대한 이야기를 해서 이슈가 됐었어.”
“정치를 좋아하시나 봐요.”
라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네 뭐, 제가 사회과학대학 출신이기도 하고 또 집에서 인터넷을 많이 하다 보니 이것저것 듣고 보게 되는 것이 좀 많네요. 지금은 이렇지만 공부도 어느 정도 했었고…”
진혁은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3’이라고 적힌 문서파일을 열었다.
“아, 이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 관한 내용이네.”
문서에는 2011년 3월 11일에 발생했던 일본 후쿠시마 제 1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 대한 개요, 경과, 피해, 일본 정부의 대응 등에 관한 내용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딱히 특별해 보이는 것은 없는데.”
진혁은 문서의 스크롤을 빠르게 내렸다.
“그래도 중요한 내용이 있지 않을까요. 아까 김준학 의원이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야기 하는 것 같던데.”
“음…글쎄요. 제가 보기에 이 문서는 그냥 해당 사건에 대한 정보만 담겨있지, 어떤 단서라던가 그런 것은 없어 보여요. 게다가 우리나라 원전이랑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엮어서 보는 것은 조금 다르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서…”
“그게 무슨 뜻이야? 우리나라 원전은 사고 가능성이 없다는 얘기인가?”
“음…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나라 원전도 사고 가능성이 있긴 하지. 그렇지만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같은 폭발 가능성은 그다지 없다고 볼 수 있어.”
라미와 가온은 진혁에게 설명을 바라는 눈치로 시선을 고정하였다.
“일단,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대한 대략적인 내용은 알고 있지?”
진혁의 말에 라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가온은 끄덕이다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음…2011년 3월에 일본 동북부 태평양 연안에서 지진이 발생했고 후쿠시마 원자로는 안전을 위해 자동으로 작동을 중지했어. 그리고 지진 때문에 송전탑이 기능을 상실해서 외부로부터 전기 공급이 끊기게 되었지. 노심냉각, 그러니까 핵분열을 통해 열을 생산하는 부분의 냉각을 위해 필수적인 전기가 끊긴 거야.”
진혁은 가온이 제대로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래, 당시에 그런 뉴스를 들었던 것 같아.”
가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진혁은 말을 계속 이어갔다.
“사실은 이때까지만 해도 아주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어. 내부에 비상발전체계가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후에 지진의 여파로 해일이 발생하게 되었고 이 해일이 변전설비를 덮치는 바람에 비상전원 공급이 안 되었어.”
진혁은 오른손으로 왼손을 덮으며 해일이 덮치는 모습을 표현했다.
“설상가상으로 급하게 공급한 배터리마저도 방전이 되어 노심의 온도는 계속해서 올라갔고 원자력발전소 내의 냉각재 상실사고가 발생하게 돼. 전력 공급이 안 되다 보니 비상 노심 냉각 계통(ECCS)이 작동하지 않았고 냉각수가 끓어올라 핵연료가 외부로 노출이 된 거지.”
“잠깐, 노심은 뭐고 비상 노심 냉각 계통은 뭐야?”
가온의 질문에 진혁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부분이 설명이 안 되면 이해하는 데에 문제가 있겠네.”
진혁은 물병을 들어 보였다.
“자, 이 안에는 물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핵연료가 들었다고 생각해보자. 뭐 실제로는 제어봉이랑 감속재가 같이 들어있지만 그건 일단 생각하지 말고.”
가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안의 핵연료는 핵분열을 통해 열을 생산하게 돼. 계속해서 열이 상승하게 된다면 이 물병은 어떻게 될까?”
“열 때문에 녹겠지.”
“그래. 열 때문에 녹게 되겠지.”
진혁은 부엌으로 걸어가 싱크대에 물을 가득 받고 물병을 집어넣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 이 병의 열을 식혀 줄 수 있는 물에 넣는 거야. 여기서 이 병이 노심이고 싱크대에 받아진 물이 냉각수야.”
“그렇군. 비상 노심 냉각 계통은 말 그대로 비상시에 노심을 식혀주는 것이겠네.”
“맞아. 이 물이 영구적으로 차갑지는 않을 거야. 노심이 계속해서 뜨거워지면 노심을 식혀주던 냉각수들도 뜨거워지고 결국에는 끓어오를 테니. 그걸 방지하는 것이 노심 냉각 계통인데, 전력이 상실 되었을 때, 다시 말해 비상시에 노심을 냉각시켜주기 위해 냉각수를 급수하는 장치를 비상 노심 냉각 장치라고 해.”
진혁은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멈추고 이내 말을 이었다.
“좋아. 아무튼 앞서 말한 냉각수가 끓어올라서 핵연료가 외부로 노출된 이 상황에서 연료봉과 증기가 수소를 발생시켰고 내부 압력이 상승해서 결국은 수소폭발로 원자로 건물이 파손되고 말지.”
진혁은 가온을 쳐다보았다. 가온은 이해가 되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 그건 이해되었어. 근데 그거랑 우리나라의 원전이랑 엮어서 보면 안 된다는 것이 강한 지진이나 높은 해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아서 그런 거야?”
“꼭 그런 것은 아니야. 가능성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도 큰 지진이 발생할 수 있고 높은 해일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그것보다는 사실 우리나라 원전은 사고가 나더라도 후쿠시마 원전사고처럼 수소폭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이 낮아.”
“그러니까, 우리나라 원전은 큰 지진이 나더라도 원전이 붕괴되거나 산산이 부서질 가능성이 적다는 거지?”
“그렇지. 이건 종류의 차이인데, 우리나라와 일본은 원자로 발전방식이 달라. 일본은 비등수형, 우리나라는 가압수형이야.”
진혁은 손가락을 하나씩 펴 보이며 말했다.
“비등수형 원자로는 핵분열에서 나온 물을 직접 증기로 만들어 발전기를 돌리는 방식이고, 가압수형 원자로는 핵분열로부터 나온 물을 사용하지 않고 열교환기를 거쳐 다른 깨끗한 물을 데워 증기를 만들어 발전기를 돌리는 방식이야.”
처음 들어보는 용어와 알아듣지 못할 말들이 진혁의 입에서 튀어나왔기에 가온과 라미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당혹스럽기는 진혁도 마찬가지였다.
“음…아무튼 중요한 것은 비등수형 원자로는 전기 공급이 차단되면 물을 원자로 안으로 들여보내는 펌프가 작동하지 않게 되고 내부 온도가 상승해서 냉각수가 증발해버리게 되지. 반면 가압수형 원자로는 물을 순환시키는 펌프가 작동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물이 순환되게 만들어져있어.”
진혁은 손가락을 휘 둘러 원을 그렸다.
“완전히 안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비교적 안전한 거지. 동시에 우리나라 원전은 격납건물 내부에 수소기체를 제거하는 장비가 설비되어 있기에 압력이 지나치게 높아질 가능성도 낮고.”
많은 정보가 정신없이 주어진 탓에 가온과 라미는 한동안 멍 한 채 서 있었다.
“원자력 발전에 대해 관심이 정말 많은가 봐요.”
먼저 정신을 차린 라미가 입 꼬리를 한 쪽만 올린 채 말했다.
“그러게, 사회과학대학이면 보통 그렇게까지 아나?”
“아, 그게 사실은 저희 아버지가 원자력 발전소에 일을 하셨거든요. 얼마 전 몸이 안 좋아지셔서 그만 두셨지만. 아무튼 어릴 때 아버지가 견학도 시켜주시고 해서 좀 알죠.”
진혁은 멋쩍게 웃으며 마지막 파일인 ‘4’ 문서를 열었다. 문서가 열리는 동안 방 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이런 상황에서 가온은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라미는 값싼 위로를 하는 것 보다 침묵을 지키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문서가 열렸고 세 사람은 비로소 무거운 침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문서에는 2016년 10월 26일 한겨레 인터넷신문의 사회지면에 게재된 기사가 담겨 있었다.
“‘경주지진은 원전에 치명적인 내륙형…경고하러 왔다’라…”
가온은 낮게 기사의 제목을 읊조렸다.
“히로세 다카시 씨의 인터뷰 내용이구나.”
“이번에도 아는 사람이야?”
가온은 질린다는 듯이 진혁을 쳐다보았다.
“꽤나 유명하신 평화운동가신데…반핵평화운동을 많이 하신 분이야. 후쿠시마 원전사고 훨씬 이전에 사고를 예견했었다고 들었어.”
진혁은 눈은 화면에 고정시킨 채로 대꾸하고 스크롤을 내려가며 꼼꼼히 기사를 읽었다.
“우리나라 원전의 내진설계 기준이 너무 낮게 설정이 되어 있대. 경주 지진을 통해 한국의 원전 관리 상황에 대한 경고를 한 내용이야.”
진혁은 말을 마치고 가온과 라미를 향해 돌아앉았다.
“지금까지 본 바로는 정확한 계획은 몰라도 원전을 목표로 무언가 꾸미고 있다고 봐도 될 것 같아.”
라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감이에요. 그런데…우리나라에 원자력 발전소가 얼마나 있죠?”
“부산에 고리원전, 경북 경주에 월성원전, 경북 울진에 한울 원전, 전남에 한빛원전. 이렇게 4개의 원자력 발전소와 24기의 원자로가 있어요. 사실 그게 문제예요.”
“너무 많다… 그건가?”
“맞아. 만일 ‘이스라엘’이 정말로 원자력 발전소에 위해를 가하는 것이 목표라면,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원자력 발전소를 공격할 것인지를 알아야 해.”
“만일… 모든 원자력 발전소를 공격하면요?”
라미의 말은 방안에 잠시 침묵을 가져왔다.
“정말로 그들의 계획이 그렇다면… 우리 힘으로 막을 방법이 없어요.”
“실패한다면 그 피해는 얼마나 될까?”
가온이 짐짓 심각한 표정을 보이며 물었다.
“하나만 터져도 재앙이라고 봐야지.”
방안에는 다시 침묵이 맴돌았다. 그러나 이번 침묵은 지금까지의 침묵과 달랐다. 어쩌면 그들 스스로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이스라엘’이라는 거대한 적을 상대로 싸운다는 커다란 중압감에 말문이 막혔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이제 다음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지 조차 몰랐기에 막막한 심정이었다.
“그래, 일단 너희 형이 남긴 단서를 찾기로 하자. 그러면 하다못해 어떤 단서라도 찾겠지.”
가온은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생각에 잠긴 듯 길게 한숨을 내쉬고 이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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