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같은 시각, 여의도 켄싱턴호텔 14층. 더뷰 라운지 안은 전반적으로 어두운 톤으로 정갈하게 꾸며져 있었다. 짙은 벽지와 낮은 조도의 조명 덕분에 공간 전체가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으면서도, 각 테이블마다 놓인 작은 등불은 필요한 만큼만 빛을 부려내고 있었다. 천장 가까이에서 잔잔한 음악이 물결처럼 퍼졌고, 이따금 묻혀드는 손님들의 나지막한 대화소리가 그 위를 덮었다.

라운지의 넓은 창 너머로는 순복음교회가 바로 보였다. 그 뒤로 한강이 길게 흘렀는데, 흐린 오후 햇살을 받아 무심히 반짝이고 있었다. 여의도라는 동네 특유의, 모든 게 지나치게 충실히 정돈되어 오히려 어딘가 비현실감마저 풍기는 그런 풍경이었다. 식사를 끝낸 김준학과 이준호는 이곳으로 자리를 옮겨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 앞 테이블 위에는 커피잔과, 반쯤 비워진 물잔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김준학은 소파 쪽으로 몸을 살짝 기대고 있었고, 이준호는 창가를 등진 채 앉아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겉으론 편안한 표정이었지만, 눈빛만큼은 매끈하게 풀리지 않았다. 조금 전 정태선과의 식사가 끝나고부터 두 사람 사이에는 어딘지 모르게 느슨하지만 예민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바로 그때, 이준호가 시선을 들어 라운지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아, 이지열 성도.”

그가 손을 들어 조용히 흔든다.

“여기요.”

입구 근처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탓인지, 이지열이란 사내가 곧바로 반응했다. 그는 두 사람 쪽으로 곧장 걸음을 옮겼다. 처음엔 다소 급한 걸음이었지만, 라운지라는 분위기를 의식해서인지 마지막엔 속도를 살짝 늦췄다. 결국 두 사람 앞에 와서 멈춰 선 그는, 허리를 깊이 굽혔다.

“안녕하십니까.”

목소리는 낮게 깔려 있었다. 겉으론 사뭇 공손했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표정이 잔뜩 굳어 있었다. 서울에서 밤새 사건을 쫓아다닌 뒤에 다시 대구까지 내려갔다가 바로 올라온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진득한 피로가 눈 밑에까지 그대로 내려앉아 있었다.

“그래요. 오느라 애 많이 썼어요.”

김준학이 먼저 말을 건넸다. 목소리는 부드럽고 표정엔 흠 잡을 데 없는 미소가 얹혀 있었다. 그는 손바닥으로 빈 의자를 가볍게 가리켰다.

“일단 앉으시죠.”

이지열은 머뭇거리다 조심스레 자리에 앉았다. 상체는 계속 앞으로 기울어 있었고, 두 손은 무릎 위에서 꼼짝없이 붙잡혀 있었다. 한눈에 봐도 편하게 앉을 마음은 없어 보였다. 김준학은 천천히 몸을 앞으로 숙이며 말했다.

“장로님께 말씀 들었습니다.”

“정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이지열은 얼떨결에 그 손을 맞잡았다. 김준학의 손은 따뜻했고, 너무 세지도, 그렇다고 느슨하지도 않았다. 딱 상대에게 ‘존중 받고 있다’는 착각을 심어줄 만한 온기였다.

“아… 아닙니다.”

이지열이 가까스로 대답했다.

“성물도 결국 되찾지 못했잖습니까.”

그 말이 떨어지자, 김준학의 얼굴에 찰나의 정적이 스쳤다. 그러나 그 흔적은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요.”

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 점은 정말 유감입니다.”

말끝에 묘하게 힘이 실려 있었다. 유감이라는 말 한 마디에도, 단순한 위로를 넘어 묵직한 무게가 밴 듯했다.

“하지만, 그게 이지열 성도님의 잘못은 아닙니다.”

김준학이 옆에 앉은 이준호를 흘끗 바라봤다. 두 사람의 시선이 짧게 교차했고, 이준호는 눈치채기 힘들 만큼 아주 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서로 합을 맞춘 듯했다.

“맞아요.”

이준호가 망설임 없이 덧붙였다.

“장로님께서 이지열 성도님 노고를 무엇보다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그는 이지열 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이며 웃었다.

“교주님께도 이미 보고가 올라갔고, 이제는 노여움도 풀리셨답니다.”

이지열의 표정이 그 말을 듣고 확연히 달라졌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거의 숨을 들이마시듯이, 이지열이 물었다. 두려움과 안도, 거기에 인정 받고 싶은 욕망까지 뒤엉킨 감정이 얼굴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물론이죠.”

이준호는 미소를 지으며, 이지열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이지열은 입술을 꼭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빛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패배감과 두려움에 움츠러들었던 사람이, 이제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간절함을 담은 눈을 하고 있었다. 김준학은 그 미묘한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물잔을 들어 조심스레 한 모금 머금었다가, 잔을 소리가 나지 않게 내려놓았다.

“그래서, 이런 제안을 하나 드려볼까 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부드러웠지만, 대화의 흐름을 바꾸려 한다는 건 명확했다.

“장로님께서 우리 이지열 성도님께 꼭 좀 전해달라고 하신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이지열은 바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네. 말씀해 주십시오.”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맡겨만 준다면 이번에는 반드시 만회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태도였다. 김준학은 곧장 대답하지 않고 뜸을 들이며 이준호를 바라봤다. 이준호가 고개를 끄덕이고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변절자 주시온에게는 동생이 한 명 있습니다.”

이준호가 담담히 말을 이었다.

“이름은 주가온이고요.”

이지열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 주가온이라는 친구를 이번에 이지열 성도께서 찾아야 합니다.”

이지열이 주저하며 물었다.

“제가 그 사람을 무슨 수로 찾을 수 있겠습니까?”

당연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는 현실적인 무게가 실려 있었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 어딘가에서, 아니, 어쩌면 서울이 아닌 대한민국 전 지역에서, 단서도 없이 젊은 남자를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준호는 이지열의 질문을 예상한 듯 이미 준비가 다 된 사람처럼 손에 쥔 스마트폰을 켰다.

“당연합니다.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죠. 그래서 당신에게 이걸 드리는 겁니다.”

그가 화면을 이지열 쪽으로 돌려보였다.

“이지열 성도께서 잘 아시겠지만, 이거, 주시온 주머니에 있던 거 맞죠?”

이지열이 고개를 끄덕이며 화면을 내려다봤다.

“네, 맞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확인해보니 여기 마지막 발신 기록이 남아 있네요?”

이준호가 손가락으로 화면을 짚었다.

“수신인 이름이 주가온으로 되어 있네요. 연락처도 저장돼 있고요.”

이지열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그러나 이준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문자 하나. 뭐, 확신할 순 없겠습니다만, 아마… 성물의 위치, 아니면 최소한 그에 대한 실마리와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이준호가 잠시 말을 멈춘 사이 김준학이 조용히 말을 붙였다.

“이지열 성도. 우리가 지금 잃어버린 건요. 비단 성물만이 아닙니다.”

그는 이지열을 바라봤다.

“주도권도 잃었습니다.”

그 한마디가 생각보다 깊게 박혔다. 이지열은 조용히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이준호가 스마트폰을 그의 앞에 천천히 밀어냈다.

“그러니, 부탁드립니다.”

무거운 분위기와 압박감과는 달리 그의 말투는 여전히 부드럽기만 했다.

“이지열 성도님께서 방법을 찾아 이어가 주셔야겠습니다.”

김준학은 손을 내밀어 이지열의 손을 붙잡았다. 그 행동이 부탁보다는 명령 같은 느낌을 강하게 주었다.

“성도님의 노고, 그것은 우리가 결코 잊지 않을 겁니다.”

말은 분명 따스했으나, 그 부드러움 안에는 숨막히는 압박감이 숨어 있었다. 이지열은 두 사람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김준학의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가, 이준호의 얼굴에는 조심스럽지만 굳은 격려가 번져 있었다. 그러나 이지열은 그 친절함 너머의 의도를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무언가를 결심한 사람의 표정보다는, 돌아갈 길이 사라졌음을 받아들인 이의 표정에 가까웠다.

“알겠습니다. 제가… 주가온을 꼭 찾아보겠습니다.”

창밖으로는 한강이 무심하게 제 갈 길을 흘렀다. 그러나 테이블 위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는, 이미 다음 장의 사건이 조용히 꿈틀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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