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28일 월요일 아침 9시 20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의원회관.
김준학 의원은 집무실 소파에 몸을 깊이 파묻고 눈을 감고 있었다. 스피커에서 흐르는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4악장. 금관이 치고 올라올 때마다 실내 공기가 조금씩 팽팽해지는 듯했지만, 그는 그 음악을 온전히 듣지 못했다. 아니, 정직하게 말하면 귀에 거슬릴 뿐이었다. 며칠째, 기분이 심란했다. 어디선가 뭔가가 어긋나는 감각, 손에 들어올 것 같던 세상이 자꾸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느낌이 목덜미를 조용히 조였다. 성물이 완성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이제 대한민국이 자기 손안에 들어올 거라고 확신했는데, 베냐민 지파의 변절자 하나가 판을 망쳐놓았다. 그 순간, 김준학의 머릿속에 낡은 성경 속 장면이 떠올랐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집요하게 쫓던 그 집착처럼 대업을 막는 자는, 늘 ‘베냐민’이었다. 김준학은 리모컨을 들어 음악을 껐다. 곧 집무실이 고요에 잠겼다. 소파 가죽에서 미세하게 삐걱거리는 소리, 복도에 스치는 구두 소리만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들어와요.”
천천히 상체를 일으키며 김준학이 말을 꺼냈다. 이미 얼굴에는 의원 특유의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비서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의원님 앞으로 전화가 와 있습니다. 정태선 씨라고… 의원님께서 아실 거라고 전해달랍니다.”
김준학의 눈꺼풀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손끝으로 수화기를 들어올리기까지, 아주 짧은 순간 동안 몇 가지 경우의 수를 머릿속에서 빠르게 굴렸다.
“내 앞으로 돌려줘요. 고마워요.”
비서가 나가며 문이 닫혔다. 그는 숨을 한 번 고르고, 천천히 수화기를 들었다.
“네, 장로님. 안녕하십니까. 김준학입니다. 연락 기다렸습니다.”
기대감 때문인지 그의 목소리엔 살짝 들뜸이 감돌았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피로가 짙게 묻어 있었다.
“그래요, 김 의원. 더 빨리 연락드리지 못해 미안해요. 하…”
정태선의 긴 한숨이 전화선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김준학의 입가가 짧게 굳었다. 그는 입술을 한 번 깨물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닙니다, 장로님. 큰일 하시느라 얼마나 바쁘십니까. 그런 말씀 마세요.”
“어제 자정 무렵에, 베냐민의 이지열 성도가 변절자 주시온을 잡았어요.”
김준학은 본능적으로 숨을 들이켰다.
“정말입니까? 잘됐군요.”
들뜬 감정이 목소리에 실린 걸 스스로 알아차리고, 그는 얼른 톤을 낮췄다.
“그럼… 성물들도 모두 찾았습니까?”
“그게… 주시온이 이미 성물들을 모두 숨겨놓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위치는… 그가 죽어버린 탓에 결국 들을 수 없게 됐고요.”
김준학의 속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변절자만 잡으면 끝일 거라 생각했지만, 그가 죽으면 남는 건 허무한 ‘빈손’뿐이었다. 빈손으로는 아무것도 밀어붙일 수 없었다. 하지만 곧 정태선의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하지만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김준학의 눈빛이 다시 살아났다.
“방법이 있습니까?”
“네, 그래서 의원님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오늘 시간 괜찮으세요?”
김준학은 곧 일정표를 머릿속에 그려봤다.
“잠시 후 10시에 본회의, 11시에는 예결위가 있습니다. 오전은 어려울 것 같고… 점심시간은 비울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럼 점심에 의원회관으로 가겠습니다.”
정태선이 덧붙였다.
“아, 가능하다면… 이준호 의원도 함께 할 수 있을지 물어봐 주세요.”
김준학의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갔다. 이준호. 그 이름이 등장하는 순간, 이 만남이 단순히 상황 보고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알겠습니다, 장로님.”
통화가 끝나고서도, 한동안 그는 수화기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손바닥엔 땀이 촉촉하게 배어 있었다. 그는 서랍을 열어 손수건으로 손을 닦은 뒤에야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같은 날, 오후 12시 20분. 국회의정관 6층에 자리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쿠치나후’의 룸 안.
방 안은 숨소리조차 크게 들릴 만큼 적막했다. 문이 닫히자 바깥 소음이 마치 다른 세상인 듯 깡그리 차단되고, 남은 건 두 사람의 목소리뿐이었다. 이준호 의원이 물컵을 들어 한 모금 삼키곤 말을 꺼냈다.
“결국 성물은 못 찾았단 얘기군요.”
김준학이 시계를 슬쩍 확인하다가 조심스레 문 쪽을 바라봤다.
“실질적으로는 그렇죠. 그런데도 정 장로님께서 ‘다른 방법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둘을 따로 보자고 하신 것도 그 이유에서고요.”
이준호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불편한 기색은 감출 수 없었다. 잠시 벽 쪽을 힐끗 둘러보던 그는 낮게 속삭였다.
“그건 그렇고, 김 의원님. 원자력연구원 쪽 얘기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준학이 검지를 입술 가까이 들며 말을 잘랐다.
“의원님, 이 자리에서는 그 얘기 하지 마시죠. 혹시라도—어디서 누가 듣고 있을지 모릅니다.”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톤만큼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이준호는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렇군요. 이거… 제가 경솔했습니다.”
짧은 침묵이 두 사람 사이를 스쳤다. 그때, 조용히 방문이 열리며 은빛 머리칼의 노신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나이에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꼿꼿했고, 걸음걸이엔 흐트러짐이 없었다. 눈빛에선 이글거리는 열기가 느껴졌고, 그 온기만으로도 방 안이 뜨거워질 것 같았다. 얼굴에 흐르는 근엄함 때문일까, 그의 존재만으로 공간이 묵직해졌다. 정태선. 김준학과 이준호가 거의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했다. 정태선은 두 팔을 넓게 벌려 번갈아가며 두 의원을 꼭 안았다.
“김 의원님, 이 의원님.”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내가 나라 일로 바쁜 분들 괜히 귀찮게 한 건 아닌가 모르겠군요.”
“아닙니다, 장로님. 그런 말씀 마십시오.”
이준호가 재빨리 의자를 빼며 자리를 안내했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정태선이 자리에 앉자 두 의원도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정태선은 잠시 고개를 숙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먼저… 이번 일로 두 분이 많이 애써 주셨는데, 결과가 마음 같지 않아서 이거 정말 미안합니다.”
김준학의 표정은, 오랜 세월 다져져 이제는 습관처럼 굳어 있었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큰일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일은 늘 있기 마련이지요.”
이준호도 고개를 무겁게 끄덕인다. 정태선은 두 손을 맞잡아 보이며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터뜨린다.
“두 분 신앙에, 참 감명받았습니다.”
정태선의 시선이 이준호를 향했다.
“본론으로 들어가죠. 이준호 의원.”
이 말에 이준호가 자세를 고쳐 앉는다.
“주시온의 아버지…가 아마도 원래 우리 식구였죠? 이준호 의원의 오랜 친구로 기억합니다만.”
이준호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주명진 말씀하시는 거죠? 예, 맞습니다.”
정태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묻는다.
“그래, 그 분은 지금 어디 계신가요?”
“오래 전에… 제1차 부흥회 때 순교하셨습니다.”
정태선은 입가에 알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었다. 보는 이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그런 종류의 미소였다.
“그 네 분 중 한 분이셨군요.”
그가 긴 호흡 끝에, 천천히 남긴다.
“아들은… 그 시온군 한 명이던가요?”
이준호가 답한다.
“장로님께서 다 알고 계시는군요. 주가온이라고, 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정태선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주가온. 그 친구부터 찾읍시다.”
그 말이 룸 안에 떨어지자, 김준학은 깨달았다. 오늘 이 자리가 ‘성물’ 때문이 아니라, 결국 한 사람 때문이라는 사실을. 방 안 공기가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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