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가 꺼져 있어 소리샘 퀵보이스로 연결되오며…”
라미는 휴대전화를 귀에 바짝 댄 채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는데도 화면을 내려놓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손끝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몇 번이고 전화를 걸어도 들려오는 것은 똑같은 안내 음성뿐이었다. 라미는 힘없이 휴대전화를 내렸다. 방 안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수유리 언덕길에 있는 오래된 빌라의 낡은 창틀 사이로 스며드는 가을 공기가 얇은 커튼을 흔들고 있었다. 싱크대 위에는 아침에 반쯤 마시다 만 물컵이 놓여 있었고, 탁자 위에는 아직 펼쳐두지도 못한 책 한 권이 뒤집힌 채 놓여 있었다. 모든 장면이 멈춰진 듯 그녀의 눈앞에 늘어져 있었다.
라미는 소파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무릎 위에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였다. 눈을 감자, 일주일 전 밤이 너무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전. 그녀의 집 문 앞에 시온이 서 있었다. 그는 평소보다 훨씬 지친 얼굴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늘 차분하던 그의 눈빛 한쪽에 선명한 긴장이 서려 있었다.
“라미야. 성물이 완성되었어.”
그 한마디에 라미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성물이 완성되었다는 말의 의미를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어떤 물건이 준비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더 이상 말로만 종말을 운운하는 단계에 머물지 않고, 실제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그럼…계획은 알아낸 거야?”
시온은 잠시 라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솔직히 성물들이 뭘 의미하는지도 모르겠고. 다만 그들이 ‘이사야’를 계속 언급하는 건 들었어.”
“이사야?”
라미는 거의 소리도 나지 않을 정도로 작게 되물었다. 시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아직 부족해. 분명히 뭔가 있어.”
그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코트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작은 메모리카드 하나를 꺼냈다. 라미의 손바닥 위에 메모리카드가 떨어졌다.
“이거 네가 가지고 있어 줘. 일주일 뒤에 내가 찾으러 올게. 그때까지만 네가 가지고 있어.”
라미는 아무 말 없이 그 작은 카드를 내려다보았다. 잠시 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시온. 지금 얼마나 위험한 거야?”
시온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라미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다가, 아주 옅은 미소를 지었다. 서글퍼 보이는 미소였다.
“괜찮아. 별일 없을 거야.”
라미는 그 말을 믿고 싶었지만, 그날의 시온은 평소와 달랐다. 늘 한 발 물러서서 이성적으로 상황을 정리하던 사람이, 그날만큼은 쫓기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아, 그리고 만약에… 정말 만약에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가온에게 연락해.”
라미의 얼굴이 즉시 굳었다.
“그 녀석한테도 물건을 하나 맡겨놨어.”
라미는 눈에 띄게 표정을 찌푸렸다. 그 이름은 늘 그녀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시온이 아끼는 동생이라는 건 알았지만, 라미에게 가온은 늘 경계심부터 들게 하는 사람이었다. 거칠고, 닫혀 있고, 세상을 먼저 밀어내는 얼굴을 한 사람. 시온은 그런 그녀의 표정을 보고도 화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손을 들어 라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무 미워하진 마. 이제 내게 남은 하나뿐인 가족이야. 걔는 어릴 때 부모님께 제대로 관심을 못 받고 자랐어.”
라미는 억지로 참으려 했지만 끝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고개를 숙인 채 시온의 품에 머리를 기댔다.
“꼭 돌아와야 해.”
시온은 그녀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리며 대답했다.
“그래. 꼭 올게.”
그리고 지금. 시온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처음 몇 시간 동안 라미는 단순히 늦어지는 것뿐이라고 계속 자신을 안심시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믿음은 무너지고 감정은 추스를 수 없이 강하게 몰려왔다. 무언가 아주 크게 잘못되었다.
그녀는 얼굴을 가리고 울기 시작했다. 처음엔 소리 없는 눈물이었다가 어깨가 흔들렸고, 어느 순간 숨이 끊기듯 떨렸다. 한번 터진 눈물은 쉽게 멎지 않았다. 그녀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흐느꼈다.
눈물이 조금 잦아들었을 때쯤, 그녀 가슴속 어딘가에서 분노가 서서히 차올랐다. 이스라엘. 그 이름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간, 라미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들이 또 빼앗아 갔다.
오래전, 시온은 그 집단 때문에 부모를 잃었다. 그 상실이 어떤 것인지 라미는 다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시온이 그 일을 평생 마음속에 묻고 살아왔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집단은 시온까지도 가져가 버렸다. 라미는 눈물을 손등으로 거칠게 닦았다. 이제 더는 울지 않았다. 그녀는 결심한 듯 손을 뻗어 탁자 위에 놓여 있던 메모리카드를 쥐었다. 그리고 그녀는 천천히 휴대전화를 집어 들어 연락처 목록을 열었다. 주가온.
라미는 그 이름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여전히 탐탁지 않았지만 숨을 한 번 고른 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차가운 발신음이 방 안에 길게 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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