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이스라엘’이 뭔가요?”

진혁은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은 채 물었다. 그의 손목 안쪽에는 방금 풀린 끈의 자국이 붉게 남아 있었다. 가온은 괜히 그 손목을 한 번 보더니 시선을 거뒀다.

“그 전에 하나만. 우리 둘 다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데, 말 편하게 하자.”

진혁은 속으로만 혀를 찼다. 누가 사람을 기절시키고 묶어 놓고 이런 말을 하나 싶었지만, 꺼내지는 않았다.

“그래. 그럼, 아까 네가 말했던 그 ‘이스라엘’이라는 거. 그게 뭐야?”

가온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고르는 사람처럼. 그러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짧게 말하면 사이비 종교 단체야.”

그는 책상 쪽으로 걸어가 케이스를 집어 들었다.

“뿌리를 더듬으면 오래됐어. 국사봉 아래 사자암, 그 근처에서 시작된 호생 기도원 운동, 거기서 갈라져 나온 몇몇 분파들… 그런 것들이 뒤엉키면서 지금의 형태가 됐어. 밖에서는 잘 몰라. 이름을 바꾸고, 조직을 쪼개고, 다른 단체 뒤에 숨어 왔으니까.”

진혁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눈썹을 치켜떴다.

“그들은 자기들이 성경에 나오는 열두 지파의 후예라고 믿어. 일단 교주를 중심으로 장로들이 있고, 그 아래에 신도들이 붙지. 겉으로는 평범한 교회처럼 보이기도 해. 어쩌면 기도원 같기도 하고.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져.”

“어떻게 다른데.”

“종말. 그들은 늘 그 얘기를 해. 때가 가까웠다느니 세상이 끝난다느니 선택된 자만 살아남는다느니. 그런 식으로 사람을 묶어.”

진혁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솔직히 반쯤은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낯선 남자가 갑자기 집에 들이닥쳐 자신을 묶어 놓고는, 이제 와서 아무래도 좋을 종교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요한계시록에 14만 4천 명이 구원받는다는 구절이 있어. 그 숫자를 자기들 식으로 해석해. 그 수가 채워지면 종말이 시작된다고.”

진혁은 잠자코 들으며 고개만 간혹 끄덕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럼, 아까 네 말로는 내가 이스라엘이 아닌 것 같다고 했잖아. 그건 어떻게 안 거야?”

가온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몇 번 화면을 넘기더니 저장된 사진들을 진혁 앞에 내밀었다. 열두 개의 문양이 정리되어 있었다. 사람, 성채, 사자, 나귀, 배, 뱀, 암사슴, 기사, 나무, 소, 뿔 달린 말, 늑대.

“이스라엘 안에는 열두 지파가 있어. 르우벤, 시므온, 유다, 잇사갈, 스불론, 단, 납달리, 갓, 아셀, 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사진을 손가락으로 하나씩 넘기며 말했다.

“각 지파마다 상징 문양이 있고, 내부 인원들은 대부분 그 문양을 오른손등에 새겨.”

“어떻게?”

“보통 방식은 아니야.”

가온은 품속에서 작은 손전등을 꺼냈다. 스위치를 켜자, 기분 나쁜 푸르스름한 빛이 방 안에 번졌다.

“자외선 문신. 이 빛 없이는 잘 안 보여.”

그가 진혁의 오른손을 잠시 들여다봤다.

“네가 정신 잃어 있을 때 확인했어. 문양이 없더라.”

진혁은 따지려다 말았다. 이미 지나간 일이었고 따진다고 해도 달라지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가온의 손에 들린 케이스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그럼 그건 뭐야.”

가온의 시선이 케이스로 내려갔다.

“그들이 ‘성물’이라고 부르는 것들 중 하나야.”

“성물?”

가온은 천천히 케이스를 열었다. 안에는 진혁이 만졌던 만년필 하나가 놓여 있었다. 진혁은 이미 한 번 봤던 물건이었지만, 처음 보는 물건인 척했다. 가온은 펜을 꺼내 안쪽 구조를 조심스럽게 분리했다. 곧 펜 아래쪽에 숨겨져 있던 단단한 물체와 길쭉한 금속 부품이 드러났다. 그리고 케이스 바닥을 뜯어내자 네모난 고무판 같은 것이 나왔다.

“뭐야, 그거.”

“겉만 펜과 케이스지. 안에는 폭발물하고 기폭 부품이 들어 있어.”

진혁은 숨을 삼켰다. 조금 전까지 자기 손으로 만지고 있던 물건이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몸을 뒤로 물렸다.

“장난하지 마.”

“장난 아니야.”

가온은 부품을 다시 케이스 안에 넣으며 말했다.

“성물은 이런 식으로 위장돼 있어. 평범한 물건처럼 보여서 들고 다녀도 이상하지 않게.”

진혁은 입술을 축였다.

“그걸로 뭘 하려는 건데.”

“그게 문제야. 나도 아직 정확히는 몰라.”

케이스 뚜껑을 덮고 잠시 손바닥으로 눌렀다.

“하지만 형은 알았던 것 같아.”

“형?”

가온은 눈을 잠깐 감았다가 다시 떴다.

“내 형. 주시온.”

그 이름을 말하는 방식이 달랐다. 지금까지의 단단한 어조와 달리 뭔가 힘없이 늘어진 느낌이었다.

“형은 이스라엘 안에 잠입해 있었어. 신도인 척 들어가서 내부를 캐고 있었지. 그러다 일주일 전에 성물이 완성됐다는 걸 알았고, 그날 밤 빼돌렸어.”

그는 얼굴에 쓸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없애버릴 수도 있었겠지. 근데 그건 임시방편이야. 물건 몇 개 없어진다고 멈출 집단이 아니거든. 형은 그걸로 계획을 추적하려 했어. 성물을 통해 작전을 알아내고, 조직 자체를 무너뜨리려 했던 거지.”

“그런데?”

가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탁자 위 빈 컵을 바라보다 말했다.

“발각됐어. 그리고 아마 죽었을 거야.”

방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진혁은 엉거주춤 일어나 싱크대로 가 물컵에 물을 따랐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조용히 컵을 가온에게 건넸다. 가온은 머뭇거리다 받아 한 모금 마셨다.

“미안.”

진혁이 어렵게 말했다. 가온은 고개를 저었다.

“형도 알고 있었어. 이런 식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거.”

컵을 내려놓았다.

“그래서 대비를 해뒀더라.”

스마트폰을 꺼내 화면을 켰다. 메시지 하나가 열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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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혁은 화면을 한참 들여다봤다.

“암호야?”

가온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해독은?”

“아직 못 했어. 근데 형이 남긴 단서가 이것만은 아닐 거야. 성물마다 뭔가 의미하는 바가 있을 거야. 이 케이스 바닥에 적힌 히브리어도 그중 하나고.”

진혁은 케이스를 다시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돈이 될지나 따지던 물건이, 이제는 전혀 다른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나한테 있다는 그 부탁은 뭐야?”

가온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진혁을 가만히 바라봤다.

“글세, 정확히는 부탁이라기보다, 네가 필요해.”

진혁은 코끝을 찡그렸다.

“나를?”

“그래. 나는 이미 찍혔을 거야. 형과 연관된 데다, 오늘 여기까지 찾아온 것만으로도 놈들 눈에는 올라갔을 거야. 내가 직접 움직이면 금방 표가 나.”

“그래서?”

“넌 아직 평범한 사람이야. 적어도 겉보기엔. 동네 편의점 가는 얼굴로 역에 가고, 보관함 앞에 서 있고, 카페에 앉아 있어도 아무도 신경 안 쓸 사람. 지금 내게 필요한 게 바로 그거야.”

진혁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상하게도 불쾌하면서 동시에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자기 인생 전체가 ‘평범하다’는 말에 살짝 기분이 상했지만, 바로 그 평범함 때문에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형이 남긴 단서를 따라가다 보면 나머지 성물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 안에 작전의 윤곽도 들어 있을 거고.”

“그걸 네가 하지 왜.”

“이미 말했잖아. 나는 눈에 띈다고.”

그리고 조용히 덧붙였다.

“반대로 넌, 지금까지는 안 그랬지.”

진혁은 그 말의 끝에서 서늘함을 느꼈다.

“지금까지는? 그게 무슨 말이야?”

가온이 케이스를 손끝으로 건드렸다.

“네가 이걸 주운 시점부터는 얘기가 달라졌을 수도 있어.”

방 안이 조용해졌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형을 쫓던 놈들이 주변을 정리하지 않았을 리 없어. CCTV를 확인했을 수도 있고, 누가 뭘 주워 갔는지 확인했을 수도 있지. 아직 안 들켰을 수도 있지만 완전히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어.”

진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집 앞 육교. 편의점. 화단. 검은 케이스를 집어 들던 자기 손.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럼… 나도 위험할 수 있다는 거야?”

가온은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무책임한 그 한마디가 생각보다 무겁게 떨어졌다. 진혁은 침대 끝에 걸터앉아 손가락을 맞물렸다. 갑자기 자기 방이 낯설게 느껴졌다. 조금 전까지는 그저 지저분하고 답답한 방이었는데, 이제는 누군가 언제든 들이닥쳐도 이상하지 않을 공간처럼 보였다. 마치 몇 분 전처럼.

“그냥 경찰에 가면 안 돼?”

가온은 대답하기까지 잠시 시간이 걸렸다.

“가도 되겠지. 폭발물이 든 물건을 우연히 주웠고, 그걸 찾으러 온 낯선 남자가 집에 침입했다. 거기까지는 설명할 수 있어. 말하는 거야 무슨 문제가 있겠어. 다만, 문제는 그 다음이야.”

시선이 진혁을 향했다.

“경찰이 네 말을 어디까지 믿어줄까. 그리고 그 사이에 놈들이 조용히 손을 떼줄까? 아니, 오히려 경찰 안에 그 놈들이 없을 거란 보장이 있을까?”

진혁은 대답하지 못했다. 가온이 말을 이었다.

“이 일에 뛰어들면 안전해진다고 약속할 수는 없어. 하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기다리는 것보단 나을 거야.”

진혁은 한참 고개를 들지 못했다. 두려웠고, 믿기지 않았다. 아직도 이 모든 게 꿈 같았다.

“거절하면?”

가온은 그를 바라보다 말했다.

“그러면 네 말대로 지금 당장 이 케이스 들고 경찰서 가.”

그리고 덧붙였다.

“다만 아까도 말했듯, 그게 정말 안전한 선택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방 안의 시계 초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한참 뒤, 진혁이 고개를 들었다.

“…내가 구체적으로 뭘 하면 되는데.”

가온의 표정이 달라졌다. 안도와 긴장이 동시에 스친 얼굴이었다.

“형이 남긴 단서를 같이 따라가면 돼. 역, 보관함, 숨겨진 장소들. 내가 움직이면 눈에 띄는 곳을 네가 대신 확인하는 거야. 나는 형의 방식과 이스라엘 내부를 알고 있고, 넌 아직 밖의 사람이야.”

“평범해서?”

가온은 잠시 진혁을 보다 말했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그게 네 장점이야.”

진혁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부정하지는 못했다.

“도와줘. 형이 죽기 전에 남긴 걸 그냥 묻어버리고 싶지 않아.”

이번에는 각이 서 있지 않았다. 붙들어 둔 감정이 아주 조금 새어나온 목소리였다. 진혁은 케이스와 스마트폰 화면, 그리고 가온의 얼굴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원래대로라면 자기 인생이 어떻게 흘렀을지 잘 알고 있었다. 늦게 일어나고, 편의점에 가고, 시간을 죽이고, 내일은 달라지겠다고 거짓말하는 하루.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두려웠지만, 적어도 멈춰 있지는 않았다.

“알겠어.”

마침내 말했다.

“대신 나한테 숨기는 거 없게 해.”

“최대한.”

“그 ‘최대한’이라는 말은 좀 불안한데.”

“나도 지금 다 아는 건 아니니까.”

짧은 침묵 끝에 진혁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좋아. 그럼 이제부터 뭘 하면 되는지 말해.”

가온은 스마트폰을 그쪽으로 돌렸다. 화면에는 여전히 시온이 남긴 암호가 떠 있었다.

숭실대입구역 ESC(atom numb13) # 1 / p . ə . p . p . ə . q . w . ə

“일단 이걸 풀어야 해.”

진혁은 메시지를 내려다보았다. 방 안의 공기가 전과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불안은 여전했지만, 이제 그 불안에는 방향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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