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검은 타원

상이집트, 1896년 11월

사막에서는 아무것도 썩지 않는다고 유누스 하킴은 믿었다. 사람의 살도, 나무도, 천도 끝내는 말라붙을 뿐이었다. 바람이 모래를 옮겨 흔적을 덮을 수는 있어도, 없던 일로 만들지는 못했다. 파묻힌 것은 언젠가 다시 드러났고, 돌에 새겨진 이름은 그것을 읽는 사람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날 밤, 유누스는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흔적은 저절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지우는 것이었다.


해가 중천에 오르기도 전이었다. 와디의 동쪽 사면에서 곡괭이질을 하던 인부 하나가 암반 사이로 난 틈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돌과 흙이 내려앉으며 생긴 작은 균열처럼 보였다. 그러나 모래를 걷어내자 회백색 회반죽이 나타났고, 그 아래에서 사람이 다듬은 석회암 가장자리가 드러났다.

인부가 손바닥만 한 조각을 떼어냈을 때, 어두운 틈에서 찬 공기가 새어 나왔다. 바깥의 열기와 섞이지 않은 공기였다. 오랜 시간 돌 안에 갇혀 있던 냄새가 모래 위로 흘러나왔다. 마른 흙과 오래된 천, 기름에 절은 나무 냄새가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 유누스는 그 냄새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왕릉이나 신전의 폐쇄된 공간에서 나는 냄새와는 달랐다. 돌과 모래만 있었다면 나지 않았을 냄새였다. 언젠가 사람이 들어갔다가 무언가를 남기고 나온 곳에서나 맡을 법한 냄새였다. 그는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발굴 책임자인 헤일 박사는 균열 앞에 쪼그려 앉아 회반죽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모래와 땀으로 얼룩진 흰 셔츠 위에 조끼를 걸친 채였고, 한 손에는 끝이 은으로 된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틈의 가장자리를 문질렀다가 냄새를 맡았다. 흥분한 표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무언가를 확인한 사람처럼 보였다.

“로랑.”

헤일이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불렀다. 측량기사 에밀 로랑이 삼각대와 측량줄을 들고 다가왔다. 그는 회반죽의 두께와 돌의 각도를 확인하더니 손바닥으로 벽면을 두드렸다. 안쪽에서 텅 빈 소리가 돌아왔다.

“고대의 봉인이 아닙니다.”

로랑이 말했다.

“벽은 오래됐지만, 이 부분은 나중에 다시 막았습니다. 아무리 오래 잡아도 수십 년 정도입니다.”

헤일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균열 너머의 어둠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누스는 그 얼굴에서 놀라움도, 실망도 읽지 못했다. 다만 헤일의 지팡이를 쥔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가는 것만 보았다.

“입구를 넓히시오.”

그가 말했다.

“상부에 보고할 때까지 사람을 더 부르지 말고.”

로랑이 헤일을 바라보았다.

“지지대를 먼저 세워야 합니다. 입구 위쪽이 불안정합니다.”

“오늘 안으로 안을 확인해야 하오.”

“그건 발굴이 아니라 침입입니다.”

헤일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우리는 문 앞에 서 있소, 로랑 씨. 문은 열라고 만든 것이오.”

그 말이 떨어진 뒤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정오 무렵, 사람 하나가 겨우 몸을 비틀어 들어갈 만큼 틈이 넓어졌다. 헤일이 먼저 등불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로랑과 유누스가 따랐다. 입구를 발견한 두 인부도 도구를 들고 따라왔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바깥에 남았다.

통로는 생각보다 길었다. 석회암을 깎아 만든 벽은 안쪽으로 갈수록 거칠어졌다. 바닥에는 모래와 잘게 부서진 돌이 쌓여 있었고, 천장에서는 마른 흙이 조금씩 떨어졌다. 헤일이 등불을 들어 올릴 때마다 불빛이 벽을 핥듯 지나갔다.

통로 끝에서 낮은 돌문이 나타났다.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고대에 봉인된 방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헤일은 문틈 사이로 등불을 밀어 넣었다. 불빛이 안쪽의 벽면에 닿으며 희미한 색들이 되살아났다. 붉은 피부의 왕과 푸른 관을 쓴 신, 제물을 든 사제들이 어둠 속에서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유누스는 숨을 삼켰다.

방은 크지 않았다. 기둥도 없었고, 황금이나 거대한 석관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왼쪽 벽 전체에 수십 개의 카르투슈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이어져 있었다. 왕의 이름을 감싼 타원들.

유누스는 등불을 가까이 가져갔다. 이미 알고 있는 이름들이 있었다. 여러 신전과 비문에서 셀 수 없이 베껴온 이름들이었다. 그러나 그 사이에는 낯선 배열도 있었다. 통상적인 왕명록에서는 서로 나란히 놓이지 않는 이름들이 이어져 있었고, 있어야 할 곳에서 빠졌다고 알려진 몇몇 타원도 이 벽에는 남아 있었다.

그는 손을 대지 않은 채 얼굴을 가까이했다. 일부 카르투슈는 망치나 정으로 훼손되어 있었다. 그러나 몇몇은 달랐다. 이름이 새겨진 홈 위로 검은 물질이 발라져 있었다. 먼지나 그을음이 아니었다. 표면이 반들거렸고, 등불이 움직일 때마다 옅은 광택이 났다. 유누스는 손톱 끝으로 가장자리를 살짝 긁었다. 검은 층 아래에서 파란 안료가 드러났다.

“건드리지 마시오.”

헤일이 말했다. 목소리가 예상보다 가까웠다. 유누스가 손을 거두었다.

“죄송합니다.”

헤일은 검은 물질이 발린 카르투슈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놀란 기색은 없었다. 그는 벽보다 방의 오른쪽 구석을 더 오래 살폈다. 그곳에는 나무 상자 세 개가 포개져 있었다. 상자들은 고대의 물건이 아니었다. 나무는 벌레가 파먹고 말라 있었지만, 모서리에는 녹슨 철판이 덧대어져 있었다. 한 상자 옆에는 유럽식 숫자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다른 상자에는 찢긴 세관 표지가 붙어 있었다. 로랑이 무릎을 꿇고 표지를 털어냈다.

“마르세유.”

그가 읽었다. 그 아래에는 날짜로 보이는 숫자가 있었다. 마지막 두 자리는 분명했다.

42.

1842년.

그들이 이 방에 들어오기 반세기도 전이었다. 로랑은 상자의 뚜껑을 들어 올렸다. 안에는 썩은 포장천과 잘린 끈, 작은 석회암 파편 몇 점이 남아 있었다. 일부는 상형문자가 새겨진 채였고, 한 파편의 뒷면에는 검은 잉크로 짧은 번호가 적혀 있었다.

번호 옆에는 타원이 하나 그려져 있었다. 카르투슈와 비슷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왕의 이름이 없었다. 검게 칠해진 빈 타원뿐이었다. 헤일이 몸을 굽혀 그 표지를 보았다. 그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변화가 일어났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유누스는 분명히 보았다. 헤일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모두 밖으로 나가시오.”

헤일이 말했다. 로랑이 고개를 들었다.

“벽부터 촬영해야 합니다. 오후 빛이 사라지면—”

“지금 당장.”

“적어도 좌표와 내부 치수를—”

헤일이 그를 바라보았다.

“출입구가 불안정하다고 하지 않았소?”

“그래서 기록을 먼저 해야 합니다.”

“입구를 보강한 뒤 다시 들어오면 되오.”

로랑은 더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헤일은 바깥에 있던 인부들에게도 철수를 명령했다. 발견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은 다른 구역으로 돌려보냈고, 입구를 연 두 인부만 남게 했다. 와디를 벗어나는 길에는 헤일의 조수 베넷이 자리를 잡았다.

유누스는 천막으로 돌아와 필사 도구를 꺼냈다. 헤일은 그에게 벽면의 왕명들을 옮겨 적으라고 지시했다. 다만 방 전체를 한 장에 그려서는 안 되며, 카르투슈를 각각 분리해 번호만 붙이라고 했다.

“배열도 기록해야 합니다.”

유누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떤 이름이 어느 이름 뒤에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순서는 내가 정리하겠소.”

“하지만 벽의 순서를 옮기지 않으면—”

“유누스.”

헤일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늘 현지 인부들의 이름을 틀리게 발음했다.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유누스의 이름을 정확히 말했다.

“당신은 보이는 글자를 옮기는 사람이오. 그 글자들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보고서가 판단할 일이오.”

유누스는 붓을 내려다보았다.

“보고서는 누가 씁니까?”

헤일의 눈빛이 잠시 멈추었다. 그 뒤에 아주 희미한 미소가 생겼다.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글자를 남길 권한이 있는 사람이 쓰지.”

그날 오후, 유누스는 해가 기울 때까지 방 안의 이름들을 옮겼다. 등불의 열기가 얼굴을 달구었고, 검은 그을음이 천장에 모였다. 로랑은 벽의 치수와 방위를 재면서도 계속 입구 쪽을 살폈다. 헤일은 몇 차례 방을 드나들며 상자 속의 파편을 확인했다.

유누스가 베껴야 할 것은 왕명만이 아니었다. 상자에 남은 번호, 포장천에 찍힌 표식, 오래된 운송 꼬리표까지 모두 옮기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러나 그것들을 하나의 목록에 적어서는 안 되었다.

헤일은 장부 두 권을 펼쳐놓았다. 한쪽에는 현장에서 발견된 번호가 적혔고, 다른 한쪽에는 전혀 다른 지명이 들어갔다.

아비도스.

덴데라.

에드푸.

오래된 개인 소장품.

출처 불명의 기증품.

같은 방에서 나온 물건들이 서로 다른 곳으로 흩어졌다. 로랑은 장부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이 물건들은 모두 한곳에서 나왔습니다.”

헤일은 대답하지 않은 채 새 꼬리표에 글씨를 적었다.

“박사님.”

로랑이 다시 말했다.

“돌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소.”

헤일은 펜촉을 잉크병에 담갔다.

“사람이 읽어주기 전까지는.”

그는 작은 석재 파편 하나를 들어 올렸다. 파편 앞면에는 왕의 이름이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헤일은 장부와 파편을 번갈아 보더니 베넷을 불렀다.

“이것은 따로 두게.”

“어느 상자에 넣습니까?”

헤일은 파편의 카르투슈를 손끝으로 짚었다.

“아직은 넣지 말고.”

베넷은 작은 놋쇠 그릇을 가져왔다. 그 안에는 검은 수지처럼 보이는 끈적한 물질이 담겨 있었다. 그는 얇은 칼로 그것을 떠서 카르투슈의 홈 안에 눌러 넣었다. 왕의 이름이 검은 층 아래로 잠겼다. 유누스의 손이 멈췄다. 헤일이 그를 보았다.

“계속 쓰시오.”

베넷이 작업을 끝내자 헤일은 파편의 꼬리표 옆에 타원을 그렸다. 검은 잉크가 종이 섬유 사이로 번졌다. 타원 안쪽까지 몇 번이고 덧칠하자 왕의 이름을 감싸는 카르투슈와 흡사한 모양이 되었다. 다만 그 안에는 아무것도 적히지 않았다.

“검은 표식이 있는 것은 따로 포장하게.”

헤일이 말했다.

“먼저 알렉산드리아로 보내고, 거기서 다시 나눌 걸세.”

로랑은 더 이상 참지 못했다.

“당신은 유물을 발굴한 게 아닙니다.”

그가 말했다.

“무슨 뜻이오?”

“이미 누군가 훔쳐간 방을 다시 찾아낸 겁니다. 그런데 지금 똑같은 일을 하고 있군요.”

천막 안의 공기가 멎었다. 바깥에서는 인부들이 상자에 못을 박는 소리가 일정하게 이어졌다. 헤일은 펜을 내려놓았다.

“발견은 땅에서 나오는 순간 완성되는 것이 아니오.”

그가 말했다.

“보고서에 들어가야 비로소 발견이 되지.”

“그렇다면 보고서를 사실대로 쓰십시오.”

“사실은 비용을 대지 않소, 로랑 씨. 허가도 내주지 않고, 배도 빌려주지 않지. 사실은 그저 거기 있을 뿐이오. 누군가 값어치를 정해줄 때까지.”

로랑은 장부 하나를 집어 들었다.

“나는 내 좌표와 도면을 고대유물국에 제출하겠습니다.”

베넷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헤일은 손을 들어 그를 멈추게 했다.

“물론 그래야겠지.”

헤일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당신이 제출할 수 있다면 말이오.”

로랑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유누스는 그날 밤 자신이 살아서 와디를 나가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생각했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 아비도스로 보낼 문서 꾸러미가 천막 앞에 놓였다. 그날까지 작업한 일반 비문 탁본과 측량표, 물품 요청서가 함께 들어 있었다. 원래라면 다음 날 아침에 보낼 예정이었지만, 헤일은 외부에서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예정대로 전달하라고 했다.

유누스는 마지막 정리를 맡았다. 그는 등불을 가까이 끌어당기고 평범한 제의문 탁본 한 장을 펼쳤다. 귀퉁이가 찢어져 뒷감에 새 종이를 덧대야 한다는 이유를 대고, 천과 종이를 조심스럽게 분리했다. 그 사이에 얇은 종이 한 장을 밀어 넣었다.

왕명실의 배열.

상자의 번호.

로랑이 불러준 측량값.

검은 타원이 붙은 물품의 목록.

입구의 방향과 와디의 윤곽.

한 장에 모두 담을 수 없어 글씨는 작고 빽빽했다. 제대로 된 보고서도 아니었고, 그 자체로 완성된 지도도 아니었다. 그러나 어떤 이름이 어느 이름 옆에 있었는지, 어느 상자가 어느 방에서 나왔는지는 알아볼 수 있었다. 유누스는 가장자리에 풀을 바르고 뒷감을 다시 붙였다. 마른 천으로 표면을 눌러 원래부터 한 장이었던 것처럼 만들었다.

잠시 뒤 문서 꾸러미는 노새에 실렸다. 헤일은 봉인을 직접 확인했지만, 탁본의 뒷감까지 뜯어보지는 않았다. 꾸러미를 실은 일행이 와디를 떠나는 동안 유누스는 그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았다. 노새 발굽이 일으킨 먼지가 저녁빛 속으로 흩어졌다. 그것이 사막 밖으로 나간 유일한 것이었다.


밤이 깊은 뒤, 유누스는 천막 밖에서 짧은 신음소리를 들었다. 바람이 천막 천을 밀어냈다. 등불의 불꽃이 가늘게 흔들렸다. 그는 숨을 죽인 채 귀를 기울였다.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헤일과 로랑이었다.

“도면을 내놓으시오.”

“이미 말했습니다. 공식 보고서와 함께 제출할 겁니다.”

“그 보고서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오.”

“그렇다면 내가 직접 카이로로 가겠습니다.”

잠시 정적이 이어졌다. 로랑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당신들은 이곳을 알고 있었군요.”

헤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상자를 보고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검은 표식도 알고 있었고.”

“목소리를 낮추시오.”

“누가 먼저 이 방을 찾았습니까? 그때도 사람들을 죽였습니까?”

무언가 둔탁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유누스는 몸을 낮추고 천막 옆 틈으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로랑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측량 삼각대가 옆으로 쓰러져 있었고, 그의 관자놀이에서 피가 흘렀다. 베넷이 뒤에서 로랑의 양팔을 붙들고 있었다. 헤일은 바닥에 떨어진 가죽 서류통을 집어 들었다. 그 안에서 접힌 도면을 꺼내 펼쳐보더니, 등불 불꽃에 가져갔다. 종이 가장자리에서 불이 붙었다. 로랑이 몸부림쳤다.

“사본이 있습니다.”

헤일의 손이 멈췄다.

“어디에 있소?”

로랑은 입가에 묻은 피를 혀로 훑었다.

“당신이 찾을 수 없는 곳에.”

헤일은 타들어가는 도면을 모래 위에 떨어뜨렸다. 그다음 일은 빠르게 벌어졌다. 베넷이 로랑의 목에 측량줄을 감았다. 로랑이 뒤로 팔꿈치를 휘둘렀지만, 옆에 있던 다른 남자가 그의 다리를 걷어찼다. 세 사람의 그림자가 등불 앞에서 한 덩어리로 뒤엉켰다. 로랑의 구두가 모래를 긁었다. 처음에는 짧고 거친 소리가 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소리도 사라졌다. 헤일은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유누스는 입을 틀어막았다. 도망쳐야 했다. 그러나 곧바로 움직이면 천막이 흔들릴 터였다. 그는 등불을 끄지 않았다. 사람이 안에서 일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야 했다. 유누스는 붓과 종이를 그대로 둔 채 천막 뒤쪽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물주머니 하나만 집었다. 기록도, 돈도 가져가지 않았다. 몸에 지닌 종이가 발견되면 그것만으로 끝이었다.

천막 뒤편은 어두웠다. 멀리 상자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낮에 새로 붙인 꼬리표가 달빛 아래 희게 떠올랐고, 그 옆의 검은 타원들만 구멍처럼 보였다. 유누스는 와디 북쪽의 낮은 능선을 향해 몸을 숙이고 걸었다. 뛰지 않았다. 달빛 아래서 뛰는 사람은 멀리서도 보였다. 그는 바위의 그림자를 따라 한 걸음씩 움직였다. 바람이 모래를 끌고 지나가는 소리가 발걸음을 덮었다. 뒤에서는 고함도, 추격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사실이 오히려 두려웠다. 로랑이 죽었다면 자신도 찾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서두르지 않았다.

유누스는 와디 입구에 가까워지며 그 이유를 알았다. 검은 형체 둘이 바위 곁에 서 있었다. 그들은 그를 쫓아온 것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유누스가 몸을 돌리기도 전에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베넷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한 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었지만, 총구는 아직 땅을 향하고 있었다.

“어디로 가나?”

유누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헤일이 조금 늦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모래가 묻은 소매를 털며 유누스 앞에 섰다.

“로랑이 사본을 만들었다고 했소.”

유누스는 마른 입술을 열었다.

“저는 모릅니다.”

“당신이 하루 종일 그의 곁에 있었지.”

“그는 측량했고, 저는 글자를 옮겼습니다.”

“둘이 꽤 자주 속삭이더군.”

“숫자를 불러줬을 뿐입니다.”

헤일은 한동안 유누스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에는 분노도 조급함도 없었다. 사람을 심문하는 얼굴이라기보다, 유물의 진위를 가리는 감정인의 얼굴에 가까웠다.

“당신 가방은 이미 확인했소.”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게 문제지.”

헤일이 말했다.

“기록을 다루는 사람이 아무것도 가지고 달아나지는 않으니까.”

유누스는 입을 다물었다. 아비도스로 향한 문서 꾸러미는 이미 몇 시간 전에 와디를 벗어났다. 그 안에 숨긴 종이가 발견될 가능성은 있었다. 아무도 펼쳐보지 않은 채 자료실 어딘가에 쌓일 수도 있었다. 습기와 벌레에 먹혀 사라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이곳에는 없었다. 헤일은 한 걸음 가까이 왔다.

“두 번째 탁본은 어디 있소?”

유누스는 그 질문을 듣고서야 로랑이 별도의 사본을 만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로랑은 자신이 도면을 복사했다고 거짓말한 것이었다. 유누스에게서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마지막 순간까지 헤일을 불안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태웠습니다.”

유누스가 말했다. 헤일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디에서?”

“등불에.”

“재는?”

“바람이 가져갔습니다.”

헤일은 잠시 와디 너머를 바라보았다. 달빛이 절벽 위에 희게 내려앉아 있었다.

“사막은 편리한 곳이지.”

그가 말했다.

“무엇이든 삼켜주니까.”

유누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헤일이 다시 그를 보았다.

“사막은 아무것도 삼키지 않습니다.”

목소리가 떨렸지만, 유누스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당신들이 묻는 겁니다.”

헤일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뒤로 베넷이 움직였다. 유누스는 머리 뒤쪽에 차가운 금속이 닿는 것을 느꼈다. 그는 눈을 감지 않았다. 와디 안쪽에 놓인 상자들을 바라보았다.

검은 타원이 찍힌 꼬리표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왕의 이름을 감싸야 할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 타원들은 아무 이름도 품고 있지 않았다. 총성은 한 번뿐이었다.


다음 날 정오, 발굴단은 와디를 떠났다. 나무 상자 열일곱 개가 노새 등에 실렸다. 상자마다 서로 다른 출토지가 적혀 있었고, 일부 꼬리표 옆에는 검은 타원이 그려져 있었다. 왕명실 입구는 화약과 무너뜨린 암석으로 다시 막혔다. 로랑과 유누스, 입구를 처음 발견한 두 인부의 이름은 임금대장과 작업자 명부에서 삭제되었다.

1896년 11월 19일 자 공식 발굴일지에는 단 한 줄만 남았다.

암반 붕괴로 조사 중단. 고고학적 가치가 있는 발견 없음.

그러나 그보다 몇 시간 먼저 아비도스로 떠난 문서 꾸러미는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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