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2019년 10월 26일 로또 제882회 당첨 번호 18, 34, 39, 43, 44, 45.

모니터 위 숫자들이 비정하게 떠 있었다. 진혁은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숫자들이 마치 자신을 조롱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복권을 구겨 쥐었다. 종이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방 안에 남았다.

“하…”

짧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번에는 느낌이 좋았다. 정말로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같았다. 그는 구겨진 복권을 아무렇게나 던져놓았다. 방 안은 어지러웠다. 책상 위에는 비어 있는 컵라면 용기와 담배꽁초가 뒤섞여 있었고, 바닥에는 벗어놓은 옷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진혁은 의자에 몸을 기대며 중얼거렸다.

“이번엔 진짜 될 줄 알았는데…”

그는 이런 말을 몇 년째 하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그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취업 준비를 한다는 명목으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고,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는 점점 더 현실과 멀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에서 ‘번호 추첨 사이트’라는 것을 발견했다. 인공지능이 통계 데이터를 분석해 로또 번호를 추천해 준다는 서비스였다. 처음엔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럴듯한 설명들이 이어졌다. 확률 분석. 패턴 추적. 통계 기반 추천.

“요즘 인공지능이 바둑도 이기는데… 이 정도는 맞출 수 있겠지.”

그는 그렇게 광고에 속아 넘어갔고, 그 사이트에 가입한 지 벌써 2년이 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당첨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친구들은 몇 번이나 말했다.

“그거 다 사기야.”

그러나 진혁은 웃어넘겼다.

“나 같은 사람은 그런 데 안 속아.”

그는 여전히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 이제 진짜 일 구해야 하는데.”

진혁은 의자에 몸을 늘어뜨렸다. 얼마 전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결과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백혈병.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머릿속이 잠시 하얘졌다. 그러나 곧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이제 돈을 보내 줄 사람이 없어진다. 그 생각이 스쳐 지나간 뒤에야 그는 자신이 얼마나 못난 생각을 했는지 깨달았다.

그는 한참 동안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구직 사이트를 열었다. 채용 공고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그는 천천히 스크롤을 내렸다.

“여긴 연봉이 너무 적고…여긴 회사가 너무 작고…여긴 집에서 너무 멀고…”

그의 표정은 점점 심드렁해졌다. 그는 자신이 꽤 괜찮은 인재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 정도면 초봉 500은 줘야 하는 거 아냐?”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시계를 보았다. 22시 40분. 진혁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10분만 쉴까.”

그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유튜브를 열었다. 추천 영상들이 줄지어 올라왔다. 하나를 클릭했다. 그리고 또 하나. 그리고 또 하나.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11시. 12시. 1시. 진혁의 ‘10분 휴식’은 끝날 기미가 없었다. 영상 하나가 끝날 때마다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솔직히 내가 저 사람보다 잘하겠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다음 영상을 눌렀다. 문득 몸이 뻐근해졌다. 그는 크게 기지개를 켰다. 시계를 보니 1시 30분이었다.

“음…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그는 노트북을 닫았다.

“내일부터 진짜 제대로 구직 활동해야지.”

그 말은 이미 수십 번은 했던 말이었다. 진혁은 아무렇게나 어질러진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금세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오전 10시 43분. 아침형 인간이 되기로 결심한 진혁은 첫날부터 늦잠을 잤다. 눈을 떴음에도 바로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고 한참 스마트폰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마침내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와 화장실로 향했다. 스위치를 눌렀지만 불이 켜지지 않았다. 전구가 나간 지 오래였다. 그는 어둑한 거울 앞에 서서 칫솔을 집었다. 치약을 짜고 대충 이를 문질렀다. 30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일주일째 걸려 있던 수건으로 입을 닦았다.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그는 모자를 눌러썼다. 지갑과 담배를 챙겼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바깥세상은 이미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집 앞 대문을 나서자, 세상의 소리가 그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집 앞 골목 오른쪽에는 강남교회가 있었다. 마침, 오전 예배가 막 끝난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교회 앞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웃음소리가 들렸고,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진혁은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사람들을 바라봤다. 문득 자신의 몰골이 생각난 그는 괜히 모자를 더 깊게 눌러썼다. 골목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돌자마자 있는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딸랑.’

종이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진혁은 인사를 건네는 점원의 말을 대충 무시하고 도시락 코너로 갔다. 하지만 도시락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

그는 짧게 중얼거렸다. 결국 길 건너편 편의점으로 향해야 했다. 그는 다시 교회 앞을 지나 길을 건너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반대편 편의점에는 다행히 도시락이 있었다. 그는 계산을 마친 뒤 전자레인지에 도시락을 넣었다.

“담배 한 대 피고 와야지.”

편의점 밖. 육교 아래. 엄밀히 따지자면 흡연 구역은 아니지만 으레 사람들이 담배를 피는 마을버스 정류장. 진혁은 그 앞에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연기를 깊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었다. 흩어지는 담배연기를 보며 앞으로의 날들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눈앞이 캄캄했다. 복잡한 머릿속을 담배에 태워 보낸 그는 꽁초를 털어 화단 쪽으로 던졌다. 그 순간. 무언가 반짝였다. 진혁은 눈을 찡그리며 고개를 기울였다. 화단 앞으로 조심히 다가서자, 화단 속에 검은 물체가 하나 보였다.

검은 케이스였다. 길이는 약 30cm 정도. 테두리는 금색으로 마감되어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꽤 값비싼 물건처럼 보였다. 진혁은 얼른 주변을 둘러보고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재빨리 그것을 집어 들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안에 뭐가 들었지?’

그는 케이스를 품에 숨겼다. 진혁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도시락을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는 그 작은 케이스 하나가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을 것이라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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