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27일 일요일, 새벽 세 시 오십 분. 관악구 봉천동, 봉현초등학교 앞 사거리.
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 후드를 깊이 눌러쓴 남자 하나가 비틀거리듯 걷고 있었다. 몇 발짝 내딛다가 뒤를 홱 돌아보고, 또 걷다가 다시 돌아보고.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후드티는 흠뻑 젖어 있었다. 등에 달라붙은 천이 숨을 쉴 때마다 조여드는 느낌이었다. 숨은 이미 턱 끝까지 차올라 있었고, 혀 밑에서는 비릿한 맛이 감돌았다. 피 맛이었다. 그는 입을 다물었다.
‘사람 많은 데로 가야 한다.’
생각은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조금만 더 가면… 살 수 있다.’
아직까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멈춰 설 때마다, 등 뒤 어딘가에서 발소리가 들릴 것 같은 기분이 사라지지 않았다. 착각인지, 실제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남자는 고개를 숙인 채 다시 걸음을 옮겼다. 봉현초등학교 앞 육교 계단에 이르렀을 때, 발걸음은 이미 무거워질 대로 무거워져 있었다. 무릎에 손을 짚고 몸을 앞으로 기울인 채, 한 계단 한 계단 올랐다. 숨이 거칠게 찢겨 나왔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몇 계단만 더.
고개를 들자 육교 위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가로등이 줄지어 이어진 그곳은, 어두운 새벽 한가운데 작은 섬처럼 떠 있었다. 그는 잠시 멈췄다. 두 손으로 얼굴을 훑어 내렸다. 손바닥에 배인 땀이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난간 너머로 도로를 내려다봤다. 멀리 신호등이 혼자 깜빡이고 있었고, 간간이 택시 한두 대가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지금 뛰어내리면…’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했다.
‘죽진 않는다. 대신 크게 다친다.’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아니다. 이 육교만 건너면 된다. 그는 다시 걸음을 뗐다. 육교 위 바람이 젖은 옷 사이로 파고들었다. 온몸이 저렸다.
육교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였다. 반대편 계단에서 누군가 올라오고 있었다. 발걸음이 저절로 굳었다. 심장이 한 박자 크게 뛰었다.
쿵. 쿵. 쿵.
사내 하나였다. 천천히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가까워질수록 숨이 막혔다. 남자는 고개를 숙이며 후드를 더 깊이 눌러썼다.
‘그냥 지나가라.’
발을 멈추지 않았다.
‘제발, 그냥 지나가라.’
돌아가는 건 이미 늦었다. 저 사내가 그냥 행인이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난간 쪽으로 몸을 붙이며 걸었다. 손이 자연스럽게 철제 난간을 쥐었다. 여차하면 넘어갈 생각으로. 두 사람 사이가 좁혀졌다. 몇 걸음. 이제 정말 몇 걸음이었다. 조심스럽게 눈을 들어 사내를 봤다. 사내는 고개를 숙인 채 걷고 있었다. 그를 의식하는 기색이 없었다. 어깨가 스칠 듯 지나쳤다. 그리고 사내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사라졌다.
남자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사내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그제야 숨이 터져 나왔다. 난간을 붙잡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 주저앉았을 것이다.
‘이제 가자.’
천천히 몸을 세웠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육교만 건너면 된다.
그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그렇습니다.”
온몸이 굳었다.
“찾았습니다.”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아까 그 사내였다. 이미 전화를 끊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가 미친 듯이 달려왔다. 남자는 몸을 돌려 뛰었다. 그러나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무릎이 풀리고, 발걸음이 휘청거렸다. 균형을 잃은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뒤에서 발소리가 빠르게 다가왔다.
손이 뻗어왔다.
그 순간.
남자의 몸이 허공으로 떴다.
시간이 느려졌다. 육교 난간이 멀어졌다. 가로등 불빛이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아래에서, 차가운 아스팔트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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