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골에는 새벽 버스가 없다

서리골에는 새벽 버스가 없었다.

첫차는 오전 8시 20분에야 들어왔다. 그것도 눈이 많이 오는 날이면 오지 않았다. 산 아래 면사무소 앞에서 버스가 멈추고, 운전기사는 마을 쪽 도로를 한 번 올려다본 뒤 고개를 저었다. 그런 날 서리골 사람들은 버스를 기다리지 않았다. 기다려봐야 오지 않는 것을,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러므로 1월 18일 오전 7시 16분, 마을 입구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던 노인은 그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그는 살아 있지 않았다.

그 사실이 확인되기까지는 몇 분이 걸렸다. 멀리서 보면 그는 그저 잠든 사람처럼 보였다. 두 손은 무릎 위에 놓여 있었고, 고개는 버스가 오는 방향으로 조금 기울어 있었다. 낡은 갈색 점퍼의 지퍼는 목 끝까지 올라가 있었고, 고무장화 끝은 가지런히 모여 있었다.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다. 처음 그를 본 경찰관은 바로 다가가지 못했다. 정류장 앞 눈밭이 너무 깨끗했기 때문이었다. 사람 하나가 걸어 들어갔다면 반드시 남아야 할 것이 없었다. 발자국도, 끌린 자국도, 차량 바퀴 자국도 없었다.

그저 눈 덮인 정류장과, 벤치에 앉은 노인뿐이었다. 경찰관 하나가 무전기를 들었다.

“정류장에 사람 있습니다.”

잠시 뒤 대답이 돌아왔다.

“생존자입니까?”

경찰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눈 위에 첫 발자국을 남기며 조심스럽게 정류장으로 다가갔다. 발이 눈을 누를 때마다 마른 종이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가 노인의 어깨를 흔들기 전, 이미 알아차린 사람이 있었다.

통제선 아래쪽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던 한지완이었다. 그는 줌을 당긴 화면 속 노인의 얼굴을 보았다. 눈꺼풀은 반쯤 내려와 있었고, 입은 조금 벌어져 있었다. 이상하게 평온한 얼굴이었다. 무언가를 기다리다 잠든 사람처럼, 혹은 기다리던 것이 끝내 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도 그 자리에 남은 사람처럼.

한지완은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곧장 조금 전 찍은 사진을 확인했다.

새벽 5시 42분.

같은 정류장.

같은 벤치.

비어 있었다.

한지완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오전 7시 16분.

같은 정류장.

같은 벤치.

노인이 앉아 있었다.

그 사이 누구도 통제선을 넘지 못했다. 도로는 눈으로 막혀 있었고, 경찰차가 마을 입구를 막고 있었다. 정류장으로 이어지는 눈밭은 발견 직후 경찰관이 만든 발자국 말고는 깨끗했다.

그런데 노인은 거기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앉아 있었던 사람처럼.


그날 새벽, 한지완이 서리골로 향한 것은 영상 하나 때문이었다.

영상은 18초짜리였다. 누가 처음 올렸는지 알 수 없었다. 지역 커뮤니티에 올라왔다가 지워졌고, 다시 누군가의 SNS에 올라왔으며, 새벽 네 시가 조금 넘자 기자들 단체방에 돌기 시작했다.

파일명은 짧았다.

seorigol_0313.mp4

화면은 흐렸다. 눈발 때문에 시야가 자꾸 뭉개졌다. CCTV는 마을 입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왼쪽에는 버스정류장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산길이 있었다.

처음 몇 초 동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다음, 화면 아래쪽을 검은 무언가가 지나갔다.

사람처럼 보였다. 아니,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어느 쪽으로 말해도 이상했다. 키가 큰 것 같다가도 낮게 엎드린 것 같았고, 팔이 있는 것 같다가도 바람에 날리는 천 조각 같았다.

다만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걷지 않았다.

걷지 않는데 지나갔다.

영상 끝에는 소리가 붙어 있었다. CCTV에 소리가 녹음됐는지, 누군가 따로 붙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낡은 스피커가 찢어지는 듯한 잡음 사이로 짧은 노래가 들렸다.

문 열지 마라.

불 켜지 마라.

야차가 지나간다.

영상은 거기서 끝났다.

한지완은 처음에 조작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영상은 너무 많았다. 흐릿한 화면, 괴상한 형체, 오래된 마을, 정체 모를 노래. 거기에 ‘실종’이라는 단어 하나만 붙이면 사람들은 순식간에 믿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영상이 올라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원도 한울군 서리면에서 실제 경찰 출동이 있었다는 말이 돌았다. 서리골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112 신고가 들어왔고, 이후 마을 주민들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말도 붙었다.

확인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확인되지 않은 말들이 너무 빠르게 같은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한지완은 그런 순간을 알고 있었다.

사건이 되는 순간.

사실보다 소문이 먼저 현장에 도착하는 순간.

그는 패딩을 걸치고 회사로 향하지 않았다. 곧장 강원도로 차를 몰았다.


서리골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해가 뜨지 않았다.

길은 마을 아래쪽에서 막혀 있었다. 제설차가 올라오지 못했고, 경찰은 통제선을 도로 중간에 쳐놓았다. 그 아래에는 이미 기자 몇 명과 유튜버 둘이 서성이고 있었다. 새벽 산골 마을에 어울리지 않는 불빛들이 눈 위에서 흔들렸다. 카메라 조명, 휴대폰 화면, 경찰차 경광등.

한지완은 기자증을 내밀었다.

“데일리온 사회부 한지완입니다. 현장 확인만 하겠습니다.”

경찰은 손을 들어 막았다.

“출입 안 됩니다.”

“주민 실종 맞습니까?”

“확인 중입니다.”

“몇 명입니까?”

“확인 중입니다.”

“112 신고는 실제로 들어온 겁니까?”

경찰은 이번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지완은 더 묻지 않았다. 현장에서 침묵은 부정이 아니었다. 대개는 아직 말하면 안 된다는 뜻이었다.

그는 통제선 아래쪽으로 물러나 카메라를 꺼냈다. 줌을 끝까지 당기면 마을 입구가 겨우 잡혔다. 눈발 사이로 파란 지붕의 버스정류장이 보였다. 낡은 시간표가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고, 그 옆에는 군청에서 붙인 산사태 대피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정류장 벤치는 비어 있었다.

한지완은 사진을 찍었다.

촬영 시간은 05:42였다.

그는 그때 그 사진을 특별히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현장에 도착하면 일단 찍는 것이 습관이었다. 나중에 보면 별것 아닌 사진에서도 단서가 나올 때가 있었다. 물론 대부분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 사진도 그럴 줄 알았다.

눈 덮인 정류장.

빈 벤치.

흐릿한 새벽.

그뿐이었다.


처음 이상하다는 말이 나온 것은 마을 안을 확인하던 경찰들 사이에서였다.

마을에는 열두 집이 있었다.

모두 불이 켜져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몇 집은 TV가 켜져 있었고, 몇 집은 부엌 불이 켜져 있었다. 어떤 집은 밥솥이 보온 중이었고, 어떤 집은 안방 라디오에서 낮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집들은 버려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방금 전까지 사람이 있던 것처럼 보였다.

첫 번째 집 현관에는 장화 두 켤레가 놓여 있었다. 두 번째 집 부엌 식탁에는 먹다 만 귤껍질이 접시에 담겨 있었다. 세 번째 집 안방에는 휴대폰이 충전기에 꽂혀 있었다. 네 번째 집 마루에는 개 사료 그릇이 놓여 있었다.

사람만 없었다.

경찰 하나가 집 안에서 나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눈 위에는 아무 흔적도 없었다. 사람이 집에서 나왔다면 남아야 할 발자국이 없었다. 마을길에도 없고, 산 쪽에도 없고, 버스정류장 쪽에도 없었다.

눈은 밤새 모든 것을 덮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아니면 처음부터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던 것처럼.

그때 마을회관 쪽에서 짧은 잡음이 울렸다.

치익.

통제선 아래에 있던 기자들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치이익.

낡은 마을방송 스피커였다. 눈을 뒤집어쓴 스피커가 바람에 조금 흔들렸다.

그리고 아주 짧게, 노래가 흘러나왔다.

문 열지 마라.

불 켜지 마라.

야차가 지나간다.

노래는 한 번만 나오고 끊겼다.

그 뒤로 마을은 다시 조용해졌다.

너무 조용해서, 조금 전 노래가 정말 들렸는지조차 확신하기 어려웠다.

한지완은 카메라를 든 채 그대로 서 있었다. 옆에 있던 지역 방송 기자가 낮은 목소리로 욕을 했다.

“씨…… 방금 들었죠?”

한지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카메라를 켰다.

녹화 버튼은 이미 늦었다.


오전 7시가 조금 넘자 눈발이 잠시 약해졌다.

그때였다.

통제선 안쪽에서 경찰 하나가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누군가 미끄러진 줄 알았다. 그러나 곧 다른 경찰들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소방대원 하나가 들것을 들고 따라갔다.

방향은 버스정류장이었다.

한지완은 카메라를 들었다.

처음에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알 수 없었다. 정류장 지붕, 시간표, 대피 안내문, 벤치. 새벽에 보았던 그대로였다.

아니었다.

벤치에 사람이 앉아 있었다.

한지완은 렌즈를 당겼다.

노인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모자는 쓰지 않았다. 흰 머리 위에 눈이 조금 앉아 있었다. 어깨에도 눈이 얹혀 있었지만, 이상하게 두껍게 쌓이지는 않았다.

마치 방금 앉은 사람 같았다.

경찰 하나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의 발자국이 깨끗한 눈 위에 깊게 남았다. 다른 경찰은 정류장 앞에서 멈춰섰다. 누군가 무전으로 낮게 말했다.

“접촉하지 마. 감식 오기 전까지 아무것도 건드리지 마.”

그 말이 통제선 아래까지 들려왔다.

그제야 기자들이 움직였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눈발 속에서 연달아 터졌다. 유튜버 하나가 흥분한 목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가 경찰에게 제지당했다.

한지완은 찍지 않았다.

그는 먼저 휴대폰을 꺼냈다. 새벽에 찍은 사진을 열었다.

05:42.

정류장은 비어 있었다.

그는 다시 카메라 화면을 보았다.

07:16.

노인이 앉아 있었다.

두 장면 사이에는 설명이 없었다.

한지완은 사진을 확대했다. 새벽 사진 속 벤치 아래를 보았다. 어둡고 흐릿했다. 별다른 것은 없었다. 이번에는 지금 찍은 화면을 확대했다. 노인의 장화 끝이 보였다. 장화 밑창에는 눈이 묻어 있지 않았다.

그는 그 장면을 오래 보았다.

눈이 오는 산골 마을에서, 정류장에 앉아 있는 노인의 장화 밑창에 눈이 없었다.

그때 경찰관 하나가 정류장 뒤쪽으로 돌아가려다가 멈췄다.

“발자국이 없습니다.”

무전 소리는 짧게 끊겼다.

잠시 아무 말도 없었다.

이어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다시 말해.”

“시신 주변에…… 이전 흔적이 없습니다.”

한지완은 그제야 셔터를 눌렀다.

한 번.

두 번.

세 번.

노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버스는 오지 않았다.


그날 오전, 서리골 이야기는 전국으로 퍼졌다.

처음에는 ‘강원도 산골마을 주민 연락 두절’이었다. 그다음에는 ‘폐광촌 집단 실종’이 되었고, 점심 무렵에는 이미 ‘야차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누가 붙였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이름은 한 번 붙으면 사건보다 오래 달렸다.

경찰은 실종자 수를 밝히지 않았다. 현장 상황도, CCTV 영상의 진위도, 새벽 마을방송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확인 중이었다.

한지완은 차 안에서 노트북을 열었다.

첫 문장을 쓰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강원도 한울군 서리면의 작은 폐광촌에서 주민들이 사라졌다.

그는 문장을 지웠다.

다시 썼다.

눈은 밤새 내렸고, 마을에는 발자국이 없었다.

그것도 지웠다.

손가락이 잠시 멈췄다.

그는 고개를 들어 통제선 너머를 보았다. 경찰들이 버스정류장 주변에 폴리스라인을 다시 치고 있었다. 흰 천으로 덮인 노인은 여전히 벤치에 앉아 있었다. 들것으로 옮기기에는 자세가 이상했다. 눕혀져 있지 않은 시신은 현장을 더 낯설게 만들었다.

한지완은 새벽 사진과 현재 사진을 나란히 띄웠다.

빈 벤치.

노인이 앉은 벤치.

그 사이 두 시간.

그 사이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눈밭.

그는 다시 첫 문장을 썼다.

서리골에는 새벽 버스가 없다.

이번에는 지우지 않았다.

그 문장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날 아침, 그 문장은 사건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서리골에는 새벽 버스가 없다.

그런데 누군가는 정류장에서 발견되었다.

기다릴 것이 없는 시간에.

걸어온 흔적도 없이.

한지완은 두 번째 문장을 쓰려다 멈췄다.

경찰 하나가 정류장 앞에서 몸을 숙이고 있었다. 그는 노인의 장화 끝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손전등으로 벤치 아래를 비췄다.

한지완은 무의식적으로 카메라를 다시 들었다.

렌즈가 흔들렸다.

벤치 아래 눈이 젖어 있었다.

아주 조금.

눈이 녹은 자국이라고 하기에는 이상했다. 위에서 아래로 녹은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배어 나온 것처럼 보였다.

경찰관은 한동안 그 자리를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마치 정류장 아래에서 무엇인가가 숨을 쉬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한지완은 그 장면을 찍었다.

이번에는 셔터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눈은 다시 굵어지고 있었다.

마을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그리고 마을방송 스피커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눈을 맞고 있었다.

그 아래로 바람이 지나갔다.

누군가 노래를 부른 것 같았다.

하지만 한지완은 이번에는 녹음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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